한쪽 서평

세계사편력

양화 2006. 6. 29. 11:05

 

J. 네루 지음/곽복희·남궁원 옮김/일빛/472면/2005

대학에 입학할 때 주변 사람들은 제가 문학이 아닌 역사를 선택한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역사가 훨씬 문학적’이라는 게 제 선택의 변이었지만 역사가 그저 재미난 옛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죠. 입학하자마자 우리에게 주어진 첫 필독서는 E. H 카아의 ‘역사란 무엇인가’였고, 그 책이 쾅하고 던져준 단 한 마디는 바로 “역사는 사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식민지였던 시절의 인도에서 민족해방 운동을 벌였던 네루가 투옥 중에 딸에게 보낸 편지로 만들어진 이 책은 사관이 역사의 전부라는 것을 실제로 알게 해 준 첫 책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책의 첫 문을 열었습니다. “참된 역사는 몇몇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고 일터에서 생활필수품을 생산하는 민중을 다뤄야 한다.” 첫 편지에서는 “(그들에 의해) 변화의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다”고 썼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네루의 신념은 어쩔 수 없이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역사발전의 법칙을 따라갑니다. 원시공동체에서, 고대 노예제로, 다시 중세 봉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옮겨갑니다. 당시에는 아직 사회주의 체제의 불완전함이 완벽하게 입증되지 않은 시기였지만 네루는 균형을 잃지 않습니다. 그는 마르크스 이론,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막연한 의구심을 테니슨의 싯구로 대신합니다.

“낡은 것은 새 질서에게 길을 양보한다...... 신은/비록 좋은 제도라도 결국은/세계를 모독하리라는 걸 알고 있으리라.” 아버지 네루는 처음에는 아무런 돌봄도 받지 못하는 딸 인디라 간디를 가르치기 위해 편지를 쓰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또한 알았을 것입니다. 아비가 쓴 것이기에 딸은 역사를 애정의 눈으로 보게 될 거라는 걸. 그렇게 씌어진 과거가 딸에게 또다른 선물이 될 거라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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