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견고한 의지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

양화 2011. 4. 20. 15:09

 

 

안도 다다오의 자서전은 푸른숲에 있을 때 에이전시에서 소개 받고 내고 싶어서 저울질했는데, 안그라픽스에서 꼭 내고 싶어 한다고 해서 포기했다. 결과적으로는 잘됐다 싶다. 무엇보다 안그라픽스는 안도 다다오라는 사람과 잘 어울리는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출판사다. 그래선지 표지가 인상적이다. 제목은 깔끔한 고딕체로 군더더기 없고, 두 줄 제목을 위 아래로 나누며 약간 야광빛이 도는 주황색 종이로 띠지라고 하기엔 폭이 넓은 덧표지를 입혔다. 그 덧표지에는 대각적으로 긴 절개면이 있는데, 그 절개면으로 안도 다다오의 한쪽 눈이 보인다. 덧표지를 벗겨보면 절개면의 폭과 크기대로 안도 씨의 얼굴에 빛이 가로지르고 있다. 이 빛은 얼굴의 곡면을 따라 오묘한 그림자를 만드는데, 그 빛 안에서 안도 씨의 눈이 반짝, 하고 빛난다. 프로 복서 출신에다 고졸 학력으로 세계적인 건축가가 된 안도 다다오의 이력이 그 표지 사진 한 컷으로 다 표현된다. 길고 어렵고 힘든 길을 헤쳐오기 위해 어떤 것에도 흔들려서는 안되었을 의지와 결단, 확고한 철학.. 그리고 이 표지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과 정확하게 호응을 이룬다.

 

 

"자기 삶에서 '빛'을 구하고자 한다면 먼저 눈앞에 있는 힘겨운 현실이라는 '그늘'을 제대로 직시하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용기 있게 전진할 일이다. 정보화가 발달하고 고도로 관리되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늘 볕이 드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른들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어릴 적부터 사물의 그림자에는 눈을 감고 빛만 보라고 배워온 아이들은 외부 현실을 접했다가 그늘에 들어섰다고 느끼면 이내 모든 것을 내던져버리고 포기한다. 그런 심약한 아이들의 비참한 상황을 전하는 뉴스들이 요즘 자주 들려온다. 무엇이 인생의 행복인지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참된 행복은 적어도 빛 속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빛을 멀리 가늠하고 그것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몰입의 시간 속에 충실한 삶이 있다고 본다.

빛과 그늘. 이것이 건축세계에서 40년을 살아오면서 체험으로 배운 나 나름의 인생관이다."  p.419

 

안도 다다오, 하면 노출 콘크리트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필사적으로 살아온 야생의 삶, 강한 삶, 견디는 삶, 의지의 삶, 견고한 삶... 그의 그런 삶과 생각은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건축 설계의 목적이란 합리적이고 경제성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쾌적한 건물을 짓는 것이다. 닫힌 실내에서 숨죽이고 사는 것과 다소 불편하더라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생활 중에 어느 쪽이 더 '쾌적'할까. 이것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다. 일상생활과 가치관의 문제까지 살펴서 궁리한다면 건축의 가능성은 더욱 넓어지고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p.335

 

"...이것 외에 또 하나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모든 것을 철두철미 배려해서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 없이 내버려두는 장소를 일삼아 만드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이미 정해진 문제와 해답을 연결하는 지식을 익히는 학교 수업과 세게를 자기 눈으로 보고 문제 자체를 찾아갈 수 있는 지혜를 키우는 방과 후의 자유로운 시간이 있어야만 비로소 교육이 가능할 것이다. 건축도 만찬가지이다. 만드는 사람이 '이곳은 이렇게 사용하시오'라고 하나하나 결정해 버린다면 사용하는 사람은 상상력을 움직여서 활용하는 재미를 누릴 수 없다. 특히 어린이에게는 그렇게 스스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방치된 장소가 필요하다." p. 321

 

"자유롭고 공평한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개인의 자아를 넘어선 공공 정신이다. 하지만 그런 정신 아래 사람들이 모이고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실감할 수 있는 장소와 시간, 참된 의미에서 '퍼블릭public'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 것은 국가나 공공이 아니다. 뭇 사람들의 인생을 풍성하게 하는 문화를 창조하고 키워가는 것은 어느 시대나 개인의 강력하고 격렬한 열정이다. 그들의 열정에 부응할 수 있는 '생명'이 깃든 건물을 나는 짓고 싶다." p. 254

 

그가 건축가여서 건물에 대해 이런 말을 하고 있지만 이런 맥락의 말들은 재능과 열정, 의지로 자기 삶을 개척해온 사람의 어록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세상과 구조의 문제를 거론하기 전에 먼저 개인의 의지와 열정을 낙오, 혹은 패배의 일차적 책임을 개인에게서 찾는 것. 사회적 편견이나 선입견을 깨고 예외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일수록 알게 모르게 이런 성향이 강하다. 그들에겐 죽을 만큼 노력해보지도 않고 세상 탓, 사회 탓을 하는 이들이 안타깝다. 그들은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며, 자신이 그 증거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이겨내온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그들은 희망의 증거라기 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절망의 증거다. 그들 말대로 사람은 생각보다 강하지만 그 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가장 약한 사람들이 기준이 되는 사회가 인간적이다. 역경을 딛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꾸 부각되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보통 사람들에게 희망의 증거로 제시되는 사회는 웬지 위험하게 느껴진다. 이런 사회에서 실패는 무조건 개인의 의지 부족, 노력 부족 탓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이야기가 광범위하게 먹히는 사회는 성공과 성취에 대한 기준이 다양하지 못하다. 

 

안도 다다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문득 얼마전 있었다던 소설가 김영하와 평론가 조영일 사이의 논쟁이 떠올랐다. 한쪽의 의견에 동조하고 응원하면서 논쟁의 전부를 따라다녔던 건 아니고 논쟁 끝에 김영하가 자신의 블로그를 폐쇄했다는 결과와 함께 대강의 이야기만 주워들었을 뿐이다. 사회 안에서 개인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자신이 원하는 형태나 방식으로 추인 받으며 만족스럽게 살아가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과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니 그 둘이 각각 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결론은 아직 잘 모르겠다.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진영의 의견을 듣노라면 그것이 마치 서로의 안과 겉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드러나는 것과 숨어있는 것이 정확하게 뒤집혀있는 게 아닌가 싶다는 거다. 그래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둘의 자리가 역전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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