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엄청나게 '아름답고' 믿을 수 없게 '감동적인'

양화 2007. 8. 12. 14:54

더 큰 호주머니가 있어야 해, ... 거대하 호주머니, 우리 가족, 친구들, 심지어 리스트에 없는 사람들, 한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보호해 주고 싶은 사람들 모두를 감싸고도 남을 만큼 큰 호주머니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큰 호주머니는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결국 모두가 모두를 잃는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발명은 없었다. 그래서 그날 밤, 나는 전 우주를 등에 짊어진 거북이 같은 기분이 되었다.  p. 104

 

나는 그날 밤 늦게까지 자지 않고 보석을 디자인했다. 내가 디자인한 것은 산책용 발찌로, 이 발찌를 차면 걸을 때 밝은 노란색 흔적이 뒤에 남는다. 그래서 행여 길을 잃어도 왔던 길을 찾을 수 있다. 또 결혼반지도 한 쌍 디자인했는데, 이 반지는 그것을 낀 사람의 맥박을 읽어내서 심장이 뛸 때마다 붉은색으로 번쩍이며 다른 반지에 신호를 보낸다. 황홀할 정도로 예쁜 팔찌도 디자인했다. 일년 동안 제일 좋아하는 시집에 고무띠를 감아놓았다가 빼서 차고 다니는 것이다.   p. 150

 

잃고 싶지 않았으나 잃어버린 사람을 기억해 내지 않으려 애쓰지만, 기억해야 해.    p. 154

 

무와 존재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어. 아침이면 무인 꽃병이 잃어버린 누군가의 기억처럼 존재의 그림자를 던졌어,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니, 밤이면 손님용 침실에서 무인 불빛이 무인 문 아래로 흘러나와 존재인 복도를 물들였지, 무슨 말을 하겠니. 무심코 무를 가로지르지 않고서는 존재에서 존재로 나아가기가 어려워졌단다.    p. 156

 

나의 모든 욕망은 그 짧았던 한 번의 대화에서 나온 것이었어, 반 시간 동안 우리가 함께했던 것은 셀 수 없이 많은 언쟁과 불가능한 고백과 침묵이었지.    p. 163

 

우리가 살아야만 한다는 것은 치욕이야, 하지만 우리 삶이 단 한 번뿐이라는 것은 비극이란다, 인생을 두 번 살 수 있다면 한 번은 그녀와 함께 보냈을 텐데.   p. 185

 

부끄러움은 자기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고개를 돌릴 때 느끼는 감정이지, 수치심은 원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고개를 돌릴 때 느끼는 감정이고.           p. 247

 

소녀 시절 내 삶은 언제나 점점 더 소리가 커지는 음악 같았어. 모든 것이 나를 감동시켰지. 낯선 사람을 따라가는 개. 그 개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지. 달이 잘못 적힌 달력. 난 그 달력을 보고 울뻔 했어. 정말로 그랬어. 굴뚝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끝나는 곳. 식탁 가에 놓인 쓰러진 병.

나는 어떻게 하면 덜 느낄 수 있는지를 배우는 데 평생을 바쳤어.

날이 갈수록 느끼는 감정이 줄어들었지.

이런 것이 늙어간다는 것일까? 아니면 늙는다는 건 뭔가 더 나쁜 것일까?

슬픔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면, 행복으로부터도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단다.

그는 공책 겉장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어. 마치 공책 겉장이 손인 것처럼. 그는 울었어. 누구 때문에 우는 걸까?...

나는 그에게서 공책을 빼앗았어. 꼭 책이 울고 있는 것처럼 책장 위에서 눈물방울이 굴러 내리고 있었지.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어.

당신이 우는 모습을 제게 보여주세요. 내가 그에게 말했어.

당신에게 상처 주고 싶진 않아요,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이렇게 말했어.

당신이 나에게 상처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게는 상처에요. 우는 얼굴을 보여주세요.   p. 248-249

 

무슨 이유에서인지 구두가 머릿속에 떠오르는구나. 내가 살면서 닳아 해지게 만든 구두가 몇 켤레일까. 몇 번이나 내 발이 구두를 신고 벗었을까. 나는 뒤축이 침대를 향하도록 구두를 침대 발치에 놓아두곤 했지.    p. 252

 

순간들 사이의 빈틈으로 여러 해가 지나갔지.   p. 256

 

나는 스케치 속의 남자가 누구냐고는 묻지 않았다. 대답을 들으면 부츠가 무거워질까 봐 겁이 났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저렇게 잔뜩 그릴 리가 없다.   p. 273

 

시간은 놓친 열차에서 흔드는 손처럼 지나가고 있었지.  p. 310

 

묘지에 닿아 빈 관을 내렸을 때, 너는 동물 같은 소리를 냈지. 그런 소리는 생전 처음 들어�어...그 소리는 바로 내가 사십 년간 찾아 헤맸던 것, 내 삶과 자서전이 되길 바랐던 것이었어요.   p. 323

 

그는 자기가 찾고 잇는 것을 찾으러 가야 한다고 생각햇어. 그러면 그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   p. 324

 

태어난 이상 천 분의 일 초 후든, 며칠 후든, 몇 달 후든, 76.5년 후든 누구나 죽어야 한다. 태어난 것은 모두 죽어야 한다. 그 말은 우리 삶이 고층 빌딩과 같다는 의미이다. 연기가 번져오는 속도는 저마다 다를지라도 불길에 휩싸여있기는 다 마찬가지이고, 우리는 모두 그 안에 갇혀 있다.   p. 340

 

너에게 할 수 없었던 얘기들로 길을 만들 생각을 해봤지. 그렇게 하면 내 짐도 짊어질 만해질지 몰라.    p. 378

 

그 애가 너에 대해 알아내려고 애쓰는 동안, 난 그 애에 대해 알아내려고 애썼어, 그 애는 너를 찾으려 하고 있었어, 네가 나를 찾으려했던 것과 똑같이 말이야, 그 생각을 하면 이미 조각났던 내 마음이 더 작은 조각들로 산산이 부서졌어, 왜 사람들은 자기가 전하려는 뜻을 그 순간에 말할 수 없을까?  p. 388

 

가방을 꾸릴 생각을 했어, 창문으로 뛰어내릴 생각도 했어, 침대에 앉아 생각했어, 너를 생각했어, 너는 어떤 음식을 좋아했을까, 제일 좋아한 노래는 뭐였을까, 첫 키스를 한 소녀는 누구였을까, 어디서, 어떻게 했을까, 방에서 뛰쳐나가야지, 무한히 두꺼운 빈 공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영원이 있었으면,   p. 390

 

왜 모든 것을 마지막처럼 대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까, 가장 한스러운 것은 미래를 너무 많이 믿었다는 거야.  p. 392

 

"... 아버지는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슬픈지에 대해서 그리고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들, 했지만 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에 대해서 쓰셨어."   p. 414

 

".. 시베리아의 유카티아는 매우 춥습니다. 숨을 내쉬면 곧바로 숨결이 파삭 소리를 내며 얼어버립니다. 그곳 사람들은 그 소리를 별의 속삭임이라고 부른답니다. 엄청나게 추운 날에는, 마을 전체가 사람과 동물의 숨결이 만들어낸 안개로 뒤덮이죠.."  p. 420

 

어느 하나 파괴되어도 좋을 것이 있었겠니?   p. 438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너무 아름다워서 차마 볼 수 없는 것, 너무 간절해서 말할 수 없는 것,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옅어지지 않는 것, -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한다는 것, 그리고 결국 모두가 모두를 잃는다는 것. 그리고 상실의 아픔.

 

24년 동안이나 소리없이 살아온 노인의 귀에 처음으로 들리던 새떼 소리 장면, 그리고 이 책의 420쪽 부근을 읽으면서 울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베리아 유카티아의 겨울풍경은 여태 내가 보았던 이미지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다. 나도 그 애처럼, 최초의 존재가 태어난 이후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죽어갔을지 생각해보았다. 알 수 없기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456쪽 이후의 그림들을 후루룩 넘겨보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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