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Lost on Everest

양화 2007. 8. 25. 18:43

"... 텐트 문 밖을 보면 희망은 사라지고 눈만 덮인 황량한 세계가 눈에 들어와.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그 반대편에는 마음을 붙일 좋은 것들이 많았어.... 이제 유일하게 남은 일은 몸을 튼튼히 하고, 더 단순하고 더 빠른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거야..."      p. 178  맬러리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갑자기 하늘이 맑게 개었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능선 전체와 에베레스트의 마지막 봉우리까지 베일이 걷힌 듯 선명하게 보였다. 내 눈은 능선의 돌 스텝 밑의 눈이 덮인 마루에 실루엣으로 보이는 아주 작은 검은 점에 고정되었다. 그 검은 점은 움직이고 있었다. 또 하나 검은 점이 나타나더니, 눈 위로 올라가 능선 마루에 앞서의 점과 함께 섰다. 그러자 첫번째 점이 커다란 바위 스텝에 다가가더니 곧 그 꼭대기에 나타났다. 두번째 점도 마찬가지였다. 순간 그 매혹적인 광경 전체가 사라졌다. 다시 구름이 덮인 것이다... "  p. 190

맬러리와 어빈의 마지막 목격자 오델의 목격담

 

... 삶의 어느 구석에서나 - 그것이 등산이든 아니든 - 최선을 다해 인간됨의 범위를 넓히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비극이되 우리가 담담하게 우리 삶 안으로 수용해 들일 수 있는 비극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p. 303-304  옮긴이의 글 가운데서

 

그래도, 후회는 없다, 피터 퍼스트브룩 지음

 

어느 순간 완벽하게 사라진다, 는 것에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었다. 말끔히 방을 치워놓고 속옷가지 하나 없어지지 않은 채 사람만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것. 구구한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가장 흔하고 속물스런 해설로 어느 남자와 눈에 맞아 야반도주를 했다부터 SF적으로 사실은 그이가 외계에서 온 우주인이었는데 지구 생명체의 주요 정보를 다 빼가지고 자기 별로 돌아갔다거나. 수많은 목격담도 뒤따를 것이다. 어느날 보니, 가만히 서서 하늘을 노려보고 있는데, 눈으로 구름을 슬슬 움직이고 있더라, 애들 학교 보내면 전에 없이 곱게 단장하고 매일 차를 타고 어디로 사라지더라.. 상상력이 부족한데다 끈덕지지도 못한 성정탓에 단 두 시간도 사라져보지 못했지만서도.

 

맬러리가 사라지기 전 -  시신이 발견되었으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지만 - 아내에게 보낸 편지 구절을 읽다가,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세 마디 사이사이에 생략된 어떤 말들을 마음속으로 더듬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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