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의 기상천외한 사상, 즉 세계 정복 및 자신과 국가의 관계에 대한 자리매김, 행정 및 군대에서의 야만인 활용, 도시의 건설, 하나의 공통된 문화, 개인의 신격화 등을 돌아볼 때, 우리는 독재적인 방법말고는 그 사상을 실현할 길이 없었다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사상이란 스스로 자라나는 것이다. ... 알렉산드로스는 제국 내에서의 공동 협력을, 그리고 국가 공동체 - 여기서는 모든 국민이 신민(臣民)이 아닌 동료가 되어야 했다 - 내에서의 단결과 화합을 기원했다. 그가 이 자리에서 바친 기원은 인류 정신사에서 혁명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사상은 맨 먼저 제논에 의해 채택되었는데, 그가 설파한 스토아 철학은 바로 인류가 형제임을 가르쳤던 것이다. p. 95
헬레니즘 시대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이 세계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세계 사회 내부에는 분명히 차이점들이 존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분모적인 문화가 자연적인 접합제 역할을 했다... 보편주의, 전세계인의 결속, 인류의 협력 등의 개념을 역설한 알렉산드로스의 꿈은, 인종과 피부색이라는 편협한 기준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여전히 하나의 도전과제로 남아있다. p. 101-102
노예는 폭력적으로 새로운 사회에 진입한다. 자기 고향을 떠나올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상황에서 인간에게 사회적, 심리적 위안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된다. 가족으로부터, 동료로부터, 자신의 종교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또한 주인, 그리고 지극히 불안정한 것일 수밖에 없는 동료 노예들과의 관계 이외에는 아무런 인간관계의 구심점을 갖지 못했다. 노예는 그가 옮겨간 새로운 사회 내의 다른 억압 받는 집단으로부터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었다. 자신의 노동에 대한 통제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체(와 인격)에 대한 통제력도 상실했다...로마의 법학자 플로렌티누스는 이렇게 썼던 것이다. "노예제는 '자연에 거슬러'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종속되는, 모든 국가에서 시행되는 법 제도이다." p. 117
니체가 한때 풍자적으로 말했듯이, 그리스인에게 노동과 노예제는 "어쩔 수 없는 불명예였으며, 그들은 그것이 불명예인줄 알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아마 그것은 막연한 부끄러움이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p. 125
바울이 볼 때, 예수의 죽음은 단순히 이스라엘을 위한 순교자의 죽음에 머물 수 없었다. 그것은 더욱 심원하고 보편적인 의미를 가져야만 했다. 바울은 이러한 의미를 해석해내고자 시도하면서, 비록 무의식적인 것이긴 하지, 분명히 헬레니즘적 배경에 의존하게 되었다. 헬레니즘 세계에는 다양한 종류의 구원을 약속하는 종교 제의들과 비의 철학들이 풍부했다.... 헬레니즘 세계의 의식과 철학들이 소중히 간직하고 전파했던 핵심적 개념은 '구원자로서의 신'과 '타락한 인간 상태'라는 두 가지 개념이었다. (이집트 오시리스 이야기와 영지주의의 예를 들어) 이 세상에서 육체를 입음으로써 영혼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마적 힘에 종속되었다. 이러한 파멸 상태에서 영혼은 그 본성에 대한 적절한 지식을 획득함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물질의 속박에서 해방됨으로써 영혼은 그 본향인 천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p. 142-143
1100년에 달하는 장려한 비잔티움 역사의 배후에는 하나의 일관된 패턴이 가로놓여 있다. 그것은 인간의 삶과 목적에 대한 각별한 관점으로서, 변화무쌍한 역사의 드라마에 하나의 통일성을 부여해 주는 것이다. ... 비잔티움의 예술 세계는 인간의 신적이고 초자연적인 열망뿐만 아니라, 정신이 추구하는 목표인 초월적인 실재까지도 표현했다. p.222, 228
교권과 속권의 대립은 중세사의 중요한 주제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묘하고도 모호한 갈등이었다. 외견상 정신적 지배자인 교황은 세속 권력을 추구했고, 교황의 세속적 경쟁자인 중세의 군주들은 정신적 지배권까지도 갈망했던 것이다... 중세교회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교회의 세입과 특권이 증가한다는 것은 곧 세속 군주의 몫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교회의 목적은 토지나 금전 이상의 것이었다. 중세인의 정신 속에는 자연 속에서의 인간의 지위에 대한, 그리고 인류를 다스리는 자에게 주어지는 영예에 대한 거의 마술적인 개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p. 282
프리드리히 2세는 1250년에 패배자로서, 좌절한 황제로서 죽었다. 프리드리히는 최초로 유럽 세속 국가를 건설했고, 법전을 편찬했으며, 상업 활동을 규제하는가 하면, 정치적 이해관계에 근거한 활동을 장려했다. 또 그는 중세의 몽매주의와 교회의 허장성세에 결연히 도전장을 던졌다. ... 프리드리히는 강력한 세속 제국을 건설하려는 자신의 꿈을 결코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흉포한 야만성도, 신앙으로부터의 일탈도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추구한 목표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었다. 역사는 한 차례 기괴한 실험을 했다가, 곧 그것을 그만두고 다른 실험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미래의 주역은 그 당시 이탈리아에서 투쟁을 거치며 막 태어나고 있던, 중간 계급이 주도하는 도시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사회였던 것이다. p. 292
1498년 4월 바스코 다 가마가 포르투갈의 카라벨 선으로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 및 중국으로 가는 항로를 발견했다는 뉴스가 리알토에 전해졌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여러 군데의 베제치아 은행이 파산했다고 한다. 은행의 주요 고객이었던 베네치아 공화국의 자본가들에게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것이 베네치아 몰락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동방으로 가는 해상항로의 발견은 궁극적으로 동방무역에 대한 베네치아의 독점권을 소멸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17-18세기에 베네치아는 투르크의 팽창에 맞서 싸운 유일한 유럽의 방패였다. p. 315
교회에 속한 신학자들은 비유를 파괴적인 텍스트를 피해 가기 위해 사용하지만, 이단자들은 비유를 정통적인 텍스트를 피해 가는 데 사용한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메시아주의가 왜 이단인고 하면) p. 362
휴머니즘은 많은 요소들이 혼합되어 형성된 운동이었다. ... 어떤 의미에서 휴머니즘은 이교적인 운동이었다. 휴머니즘은 교회가 규정한 편협한 금욕주의를 못 견뎌 했다. 또한 금욕주의자들처럼 자연을 아름다운 유혹이라 하며 혐오하지도 않았고, 육체를 악한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수도원에서 행해지는 '삶의 포기'만이 미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중세 교회의 핵심 교리는 원죄였다. 이 교리에 의하면 영혼과 육체는 확연히 구분된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육체를 통하지 않고서는 영혼을 표현할 길이 없으므로, 원죄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였다. 이에 반해 휴머니즘의 교의는 인간이 본래 선하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영혼과 육체가 하나이며 육체의 활동은 영혼의 휴머니티를 자연스럽고도 적절하게 표현한다는 그리스인들의 믿음에 다름 아니었다. p. 388-389
에라스무스는 교회 사람들의 정신을 위축시키는 형식주의가 그들의 삶마저 오그라들게 만들고 있음을 보았다. 만일 사고한다는 것이 단순히 전통적인 논의를 늘어놓은 것에 불과하다면, 삶이란 단지 전통적인 관행을 배열해놓은 것에 불과하다. p. 394
에라스무스는 루터의 교회 비판이 옳다고 믿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루터의 비판이, 결과적으로 휴머니스트들이 그토록 강력히 반대했던 교회 내의 완고한 세력과 편협한 수도사들의 입장만을 확고하게 해줄 것임을 알 고 있었다. 만일 루터가 패배해버린다면, 교회 내의 반동적인 인사들은 휴머니스트들이 애써 쟁취한 것들을 모조리 쓸어내버릴 것이다. 그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입장에 놓여있었다. ... "모든 사람이 순교를 감당할 만큼 강인한 것은 아니다. 나는 만일 폭동이 일어날 경우 베드로처럼 행동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나는 교황과 황제의 칙령을 그것이 정당하기 때문에 따른다. 그들의 법이 사악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것이 안전하기 때문에 받아들인다." p. 404, 406
바로크 양식의 공통영역은 운동성, 강렬함, 긴장, 힘 등에 그 초점이 모아진다.... (르네상스 양식의 경쾌한 세속성과는 대조적으로) 바로크 양식은 대립과 극단 속에서 회의하고 고뇌하는 모습이다. 포만하고 무분별한 감각적 쾌락이 아닌, 양심의 가책을 수박하는 수척한 관능성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 (이것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면서 겪었던 낯선 경험들 (때문이다). 말하자면 파괴적 폭발력을 지닌 중심부에서의 새로운 경험이 외적으로 투사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크 양식을 등장시킨 시대의 폭발력은 부분적으로는 '우주적'이었고, 부분적으로는 '사회적'이었다. p. 440, 441, 442
한편으로는 막강한 힘의 경험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철저한 힘의 결힙, 즉 무력감의 경험이 있다.(443), 권력에의 매혹과 인간 한계에 대한 절망(443),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감각, 그리고 시간이 가져다주는 냉혹한 파괴에 대한 감각(448), 고딕의 정신과 르네상스의 정신을 새롭게 통합시키려는 불가능한 시도(450), 시간 및 운동에 대한 감각과 긴밀하게 연결된 것은 인간과 자연의 개별성에 대한 집착이다(455), 이들 작품에서 '지금 여기'라고 하는 것은 지나간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하나의 비유인 것이다(455) - (바로크의 배경과 바로크적 문화 및 예술에 대한 설명 가운데서..)
우리는 꿈으로 만들어진 존재들
우리의 �은 인생은 잠으로 에워싸여 있다. (셰익스피어)
호메로스에서 돈 키호테까지, 윌리엄 L. 랭어 지음, 박상익 옮김
역사가 문학적인 것은 그게 예측불허의 인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역사가, 적어도 소설보다 지루하거나 재미없는 것으로 치부된 것은 오로지 책 때문이었다, 고 나는 생각한다. 역사의 재미를 단박에 살려주는 멋진 책. '호메로스에서 돈 키호테까지' ,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 두 권의 책을 꼭 한번 읽어보시길... 세계적인 역사학자들이 보여주는 각 시대의 압축적인 한 사건, 인물이 과거와 미래를 어떻게 이어주는지, 통찰력 넘치는 데다 아름답기까지 한 문장으로 전해준다. 번역도, 편집도 완벽하다!
호메로스를 통해서 고대에 역사가 처음 존재한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고,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통해 그리스의 민주정에 소피스트가 한 역할을 음미한다. 의심할 바 없는 절대선이라 생각했던 민주정이 다수의 횡포를 내재한 불길한 형태의 무질서라고 일갈하는 말은 얼마나 상쾌한지.. 알렉산드로스의 아시아 원정을 통해 그가 꿈꾸었던 사해동포주의를, 노예 출신 노예상인 티모테오스의 생애를 통해 고대 노예제를 성찰한다. 성서 가운데 바울이 쓴 부분이 성서로 편입되는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교 문화와 헬레니즘 문화가 마찰하고 다시 융합하여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것을 살펴본 것은 참신한 시각이다. 로마를 서서히 해체하며 중세를 열어젖힌 야만족(이건 판단을 배제한 명칭일 뿐)의 역사, 지금의 서유럽 역사를 진두지휘한 샤를마뉴 대제, 계몽주의 역사가들에 의해 평가절하되었던 비잔티움 문화의 재조명도 탁월하다.
잉글랜드에서 앵글로색슨 시대를 종식시킨 정복왕 윌리엄과 지적 호기심을 동력으로 근대적 전제 군주를 꿈꾸었던 프리드리히 2세는 역사의 우연과 함께 탁월한 한 인간이 역사의 물꼬를 어떻게 바꿔버릴 수 있는지 알게 한다. 경제적 번영으로 역사의 단계를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단초를 놓은 베네치아라는 도시국가의 운명이나 신화와 무지의 바다가 가로막고 있던 역사의 흐름을 14년간의 항해로 풀어버리고 근대로 거침없이 나아간 항해왕자 엔리케도 새롭다. 그뿐인가. 그리스도교 다른 쪽 얼굴인 이단의 여러 모습을 통해 종교가 아닌 사회와 정치, 과학과 예술의 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었으며, 시대를 초월한 중용의 지식인 에라스무스의 행적을 통해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 신념을 지킨다는 일의 숭고함을 깨닫게 한다.
과장되고 껍데기 뿐이라고 간과되어온 바로크 문화 예술에 대한 조명은 정말 빼어나다.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우주 속 외로운 존재 지구의 발견으로 인간의 왜소성을 자각했지만 과학의 발달로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거대한 인간, 전제 군주의 막강한 힘의 경험과 순식간에 무력해진 봉건 영주의 존재, 양 극단이 부딪히는 경험 속에서 예술을 꽃피운 그 시기는 인간 하나하나가 역사라는 거대한 열주에 돋을새김된 꽃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세르반테스가 그리고 있는 돈 키호테의 세계가 아버지 세대의 영웅주의와 아들 세대의 환멸을 동시에 표현한 정신분열적 이중성의 세계라고 한 마디로 분석한 것은 어찌나 날카로운지. 내용도 알찬데, 표현 하나하나는 또 어찌나 아름다운지. 이런 걸 문학적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바로크 시대의 천정화를 묘사하면서 "그것은 아름다운 광채의 세계, 외관의 세계이며, 덧없는 형상들이 비등하는 포말의 세계였다"라고 표현한다든지, 면죄부에 대한 루터의 분노를 예감하게 하는 에라스무스의 글을 "로마에 폭풍우가 몰려들고 천둥번개가 치기 16년 전, 다가올 사태를 미리 예고한 나지막한 우르릉거림 같은 것이었다"라고 표현한 것이나. 역사가 지루하게 반복되는 고유명사, 연도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처럼 맥박치고 살아움직이며, 지금 이 잎을 틔우기 위해 과거에 어떤 씨가 뿌려졌는지, 아주 명확한 인과의 고리를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통사가 아니라도 이렇게 명쾌하게, 객관성을 휘장 삼아 자신의 관점을 가리지 않고도 이렇게 설명해줄 수 있다니,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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