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러갔다

밀양 - 살려달라고 손을 내밀라

양화 2007. 5. 28. 15:48

 

배우 전도연이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단다. 정말 기쁘고 흐뭇한 일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온 나는 솔직히 송강호가 더 좋았다. 속물스런 농담을 천연덕스럽게 하다가 성경책을 빼들고 나가던 모습이나 아이 사망신고를 하러 가는 그녀의 택시에 억지로 탔다가 무안하게 내쫓길 때, 의식을 잃은 채 응급실 침대에 누운 그 여자의 머리카락에 가만히 코를 묻을 때, 역에 나가 힐끗힐끗 눈치 보면서 찬송가에 적당히 장단 맞출 때, 그가 좋았다. 생일날, 식고 말라붙은 김치찌개에 혼자 술을 마시며 걱정, 잔소리 98%의 엄마 전화를 받을 때도 그랬다. 무엇보다 오밤중 집에서 혼자 노래방 기계를 틀어놓고 온갖 감정과 무드를 잡으며 노래를 하던 모습, 송강호는 연기하지 않았다. 그는 영화 속의 '종찬'을 이해하고 느끼고 그래서 마침내 산다. 그렇다면 종찬은 누구인가. 그는 보통 사람이다. 조금 외롭고, 조금 재밌고, 조금 슬프고, 조금 기쁘기도 하고, 조금 화도 내고, 조금쯤은 사랑도 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다.

 

그가 한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서울에서 죽은 남편의 고향을 찾아 아들 하나를 데리고 왔다. 귀염성 있는 얼굴에 여성스러운 도도함을 살짝 두른, 피아노 치는 여자. 그녀의 고장난 차도 견인해주고 살 집도 구해주고 아는 집 아이들 피아노 학원을 옮기라고 이야기해주고 회장님도 소개해준다. 처음엔 예쁘장한 얼굴과 살짝 거리를 두는 도도함에 끌렸겠지만 그는 어느새 불쌍한 그녀를 기웃거린다. 아무도 그에게 알려주거나 그 역시 한번도 아는 체한 적은 없지만 다른 어느 곳과도 다르지 않은 지방 도시 '밀양'에서 소문이 전해지는 방식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남편이 사고로 죽었단다, 그리고 어쩌면 그 남편이 바람을 피워 그녀를 배신했다는 것도 짐작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도와주고 싶어 하고 환심을 사려고 한다. 절대 그는 그녀 타입이 아닌데도. '밀양' 포스터의 대표 카피는 이런 그를 일러 "이런 사랑도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실 모든 사랑은 그렇다.

 

이 영화의 다른 카피 하나는 "당신 같으면 이래도 살겠어요?"다. 남편은 바람 피우다 사고로 죽고 받은 보험금은 남편 사업 빚으로 다 털렸다. 자신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살고 싶어서 찾아든 남편 고향 밀양에서 끔찍하게 아이를 잃었다. 그리고는 영화는 이래도 살겠냐고 묻는 것이다. 고통의 극한에서 그녀가 몸부림칠 때, 모든 세상과 사람은 그녀 곁에 없다. 아이가 유괴되었다는 걸 알고, 한달음에 그녀를 도와줄 밀양의 단 한 사람을 떠올리고 달려갔을 때, 그는 노래방 기계를 틀어놓고 노래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 외로움을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 화장장에서 떨어져 앉아 내가 왜 그랬을까요, 물어도 대해주는 사람은 없다. 그녀가 난감한 상황을 겪을 때,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은 곁에 없다. 하늘은 무구하게 푸르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삶과 아픔을 견뎌내기에 바쁘다. 그들의 위로는 생일 축하처럼 소란하고 화려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싱크대 앞에 서서 혼자 밥을 먹다 울컥 목이 메인 채로 견뎌야할 뿐이다.

 

고통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계량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내가 너보다, 네가 나보다 더 힘들다고 말할 수 있을까. 종찬의 외로움이, 유괴범 딸의 고단함이 신애보다 덜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감독은 신애의 고통을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무게로까지 끌어올렸겠지만 그래도 모든 이에게 고통은 종류에 상관없이 같은 질량일 뿐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마다 여주인공이 어려운 상황에 빠지면 기다렸다는 듯 구세주가 나타나는 걸 보고 저런 게 어딨어, 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을 때, 그것을 아무도, 신조차도 대신해주거나 덜어줄 수 없다는 것이 더 또렷해져서 사람들은 더 절망한다. 자기와 같은 질량의 고통을 겪고 있을 그 아이를 연민하게 될까 봐 머리를 자르다 말고 뛰쳐나온 여자. 반듯하게 앉아 엉망이 된 머리를 스스로 자르듯, 균형을 잃어버린 삶의 균형을 다시 돌이키는 것 역시 혼자서 해야만 한다. 다른 사람은 그저, 그 사람이 제대로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게 거울을 들어줄 수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 거울 하나, 그것이 반사해 그 사람의 얼굴에 되비친 햇빛. 그 비밀스러운 빛이 없다면, 누구도 살아갈 수 없다. 그러니, 고통스럽다면 살려달라고 피 흐르는 손을 누군가에게 내밀라, 죽지 말고.

 

* 이창동 감독은 소설가라서 그런지 영화 제목이 참 좋다. 그리고 난 그냥 이창동 감독이 박광수 감독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줄 알았는데, 그가 연극배우 출신이란다. 그가 배우를 잘 고르고 최선의 연기를 뽑아내는 이유를 알겠다. 전도연. 그녀에 대해서는 더 말이 필요없다. 면회하러 가서 자신에게 용서 받기 전에 신에게 용서 받았다는 평화로운 얼굴의 그를 바라보던, 점점 멍하고 막막하고 알쏭달쏭해지던 표정. 난 터뜨리는 오열보다 그게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