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서평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

양화 2006. 7. 10. 13:48

 

 

엄홍길 지음/이레/352면/2003

등반문학이라는 장르는 우리에게는 친숙하지 않은 장르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자연에 대한 도전과 승전으로 확장하고 싶어한 서구인들과 동양인의 정서는 많이 다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에 오르는 것을 흔히 ‘정복’이라고 표현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겠죠. 하지만 등반문학에는 사람들의 마음과 감정을 동요시키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다. 8천 미터 봉우리는 더 이상 산의 물리적인 높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거지요.

산악인 엄홍길은 히말라야의 8천 미터 이상의 산 14개를 오른, 인류 역사상 여덟 번째 사람입니다. 불굴의 의지와 강철 같은 체력, 두려움 없는 정신, 그런 것들을 갖춘 강한 사람을 떠올릴 테지만 이 책에서 만나는 엄홍길은 좌절하고 실패하며 슬퍼하고 욕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해발 780미터 도봉산을 10번 오르는 것과 같지 않겠냐며 시도했던 1985년 첫 에베레스트 등정에서 그는 먼저 공포를 만납니다.

떨어지는 얼음덩이에 맞아 정강이가 으스러진 셰르파, 밤새 큰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폭풍이 텐트를 후려치고, 본능적인 불안감에 구르듯 밖으로 나왔을 때, 식량과 배낭, 심지어 등산화까지 몰고 텐트는 눈앞에서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립니다. 영하 20도의 추위에 남겨진 그들의 막막함과 절망, 공포가 엄습해 읽던 저조차 몸을 떨었습니다. 뻣뻣하게 언 등산화에 그가 발을 넣을 때 저 역시 생생한 삶의 감각에 저절로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후 K2로 14좌 완등이 끝날 때까지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에는 말 그대로 피와 땀이 고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거나 실종되었고, 스스로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16년 동안 거듭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책이 끝나갈수록 제 마음 속에는 그 질문만이 오롯해졌습니다. 하지만 책이 끝나도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인간의 말은 없다는 것만 또렷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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