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서평

그대의 차가운 손

양화 2006. 6. 9. 13:13

 

한강 지음/문학과지성사/330면/2002

좀 촌스러운 비유라 망설여지긴 하지만 소설가 한강을 생각하면 검은 연탄 한 장이 떠오릅니다. 연탄광에 참하게 쌓여있다가 연탄 아궁이 속에서 붉고 뜨겁게 몇 시간을 타고는 맑고 가벼운 흰 재가 되는 그 일생이 어쩐지 그와 그의 소설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장편 제목에 들어간 ‘검다’거나 ‘차갑다’는 단어가 무색하게 그이의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원시적이라 할 만한 붉고 뜨거운 열기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대의 차가운 손’도 그렇죠. 예술의 완성과 삶의 완성이 합일되는 예술가 소설의 계보를 잇고 있는 이 소설은 소설가가 우연히 얻게 된 한 조각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액자처럼 품고 있습니다. 우연히 몇 번 맞닥뜨린 조각가의 작품에서 기이하고 섬뜩한 느낌을 받았던 소설가 H는 처음이자 마지막 아주 짧은 순간 그, 조각가 장운형을 만나 질문 하나를 던지지요. “왜 사람을 떠서 작품을 만드시는 거죠?”

장운형 스스로는 그가 남긴 기록이 그에 대한 답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일 거라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이야기 속에서 왜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합니다. 그것이 이 소설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지요. 아름다운 손을 가졌으나 아름답지 않은 몸을 가진 L, 아름다운 몸을 가졌으나 손을 감추는 E. 두 여성의 삶과 육체는 정신적 외상과의 오랜 싸움 끝에 얻어진 그들만의 전리품 같은 것이었습니다.

장운형이 얻고 싶었던 것은 처음엔 그들을 떠낸 껍데기였지만, 나중엔 그것이 내용물과 완전히 엉겨있는 껍질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괴물 같은 뚱뚱한 육체도, 그저 흔적으로 남은 작은 상처도 그저 가면이 아니라 존재 저 뒤에 있는 것들에게로 가는 통로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자신의 유고전에 나타난 조각가와 E가 여전히 껍데기를 뒤집어 쓴 채 살아가는 다른 이들 눈에 띄지 않는 것은, 그러니 당연한 것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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