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구 글·사진/문학동네/256면/2004
사진가 강운구 선생의 글은 이 책의 표지처럼, 이 책의 제목처럼 담백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질감의 사진을 찍는다는 선생의 글은 군더더기가 없으며 무엇보다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람결에 물결치는 보리밭을 바라보며
“난데없는 ‘우리 밀 살리기’가 등장해서 한동안 바람을 타는 듯하더니 쑥 들어가버렸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것이 ‘장사’가 아닌
‘운동’이었다면 ‘우리 보리 살리기’를 했어야 마땅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싱그러운 찻잎을 따
나부대대한 옹기 접시에 담아놓고 구도도, 때깔도 꾸미지 않고 그때의 빛과 시간만을 담아 찍은 사진을 보아도 그렇고, 아람이 벌어진 밤송이들,
붉게 물든 감잎과 감을 찍은 사진, 반쯤 부서진 연탄재들 틈에 흩어진 붉은 동백꽃은 ‘정직’이 가질 수 있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대한민국 곳곳의 사계가 시간의 빛을 머금은 채 그렇게 살아있습니다.
단순한 글이 단순하기만 할까요? 사진을 찍기 위해 그는 피사체를
오랫동안 응시합니다. 봄에 피는 “감나무 꽃은 그저 소박하게 꽃 시늉만 하고 있을 뿐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5월에 남쪽의 마을을 지나노라면,
샛노란 새싹들이 꼭 꽃처럼 피어있는 싱그러운 감나무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 여린 꽃 같은 새싹들이, 물기라곤 없어 보이는 비쩍 마른 감나무
가지들에게 가리어 갈 때쯤 감꽃이 핀다.”
하지만 그것은 “피어있더라도 유심히 보기 전에는 눈에 잘 뜨이지도 않는다. 봄이 깊어져
감꽃이 땅에 떨어져 뒹굴 때, 그때서야 사람들은 그 꽃을 보게 된다. 그 꽃보다도, 그 꽃 같은 새싹보다도 감나무는 가을 잎이 더 아름답다.”
봄부터 가을까지 감나무가 언제 가장 아름다운지 그는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본다는 것은 망막에 잠깐 맺힌 상이 아닙니다. 카메라가
눈과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