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숙·노성두·최성희 지음/아트북스/260면/2005
초상화와 풍경화 가운데 갖고 싶은 그림으로 어느 작품을 고르냐에 따라
서양인과 동양인이 구분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동양 사람들은 대개 풍경화를, 서양인들은 초상화를 고른다고 합니다. 풍경을
대상이 된 자연 정도로 정의한다면, 이런 의문이 생길 법도 합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가 아닌가 하고 말이죠. 그렇게 생각해보면 초상화와
풍경화도 금세 경계가 희미해집니다.
‘자연을 사랑한 화가들’이라는 제목처럼 이 책의 주인공들은 엄밀히 말해 화가들입니다. 특히
프랑스의 바르비종 지방을 중심으로 한 화가들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연을 그렸습니다. 책의 구성이 그 화가들의 초상과 그들이 그려낸 풍경화로
서로 씨줄이 되고 날줄이 되어 이루어진 것은 당연한 것이겠죠. 책은 먼저 우리를 화가들의 거대한 화실이 되었던 공간, 바르비종으로
데려갑니다.
그곳에서 무명 화가들의 숙박료를 대신해 그린 풍경화로 한쪽 벽면을 채운 슈발 블랑에 들르고, 죽은 후의 밀레의 무덤과
살아있을 때의 집을 둘러보고, 예술가들에게 포도주를 무료로 주었던 간느 영감의 여인숙을 돌아봅니다. 원시의 기운이 감도는 퐁텐블로 숲의 푸른
그늘 속에 잠겨있다가 나오면, 거기서 들었던 새소리와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나있던 오솔길에 조용히 나있던 발자국 같은 것들이 마음속에
담깁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증언하며, 자연을 바라보는 시대의 시선을 반영하는 풍경화의 역사를 통과하고 나면 드디어 우리는
바르비종의 화가들을 만납니다. 뒤프레의 떡갈나무와 도비니의 오리나무, 밀레의 농부들과 자크의 양떼, 트루아용의 개와 소. 영웅의 격정적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혹은 신의 가르침을 들려주기 위한 배경으로서의 풍경은 그제서야 인간의 눈동자에 담긴 그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