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아자르 지음/용경식 옮김/문학동네/358면/2003
처음부터 자기 앞에 놓인 생이 아름다웠던 건 아니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7층 아파트, 그 계단을 올라가는 로자 아줌마의 무거운 몸, 점점 시력을 잃어가던 하밀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눈, 우산으로 만든
친구 아르튀르의 푸른 얼굴,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한 바나니아의 미소. 창녀의 아이로 태어난 아랍인 소년 모모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덫 같은 것들이었을 테니까요.
제 몸 하나 걸어올라가기 힘든 계단을 로자 아줌마를 부축하며 올라가야 했고, 빛을 잃어가던
하밀 할아버지의 눈은 모모가 유일하게 삶에서 벗어나 위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뜻이었으며, 친구 아르튀르는 고단한
자신에게 위로의 말 한 마디 건네주지 않았고, 양육비가 끊겼지만 그 미소 때문에 빈민구제소로 보낼 수 없었던 바나니아에게는 자신의 양육비를
나눠줬을 테니까요.
배가 아프면 엄마가 왔다던 친구의 말에 배 아프기를 자청하는 아이, 그리움조차 아픔인 아이. 그 아이가 죽은
로자 아줌마 곁에서 3주를 보내며, 파래지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악취가 풍기기 시작하는 거대한 몸에 향수를 병째 뿌려주면서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걸 듣자 저는 하밀 할아버지처럼 부끄러워졌습니다. 어른이 된 저는 어느 순간부터 사랑없이도 사람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거기에도 인간의 존엄이라는 것이 있을까 싶은 벨빌 거리에는, 태어나지 않는 게 어쩌면 더 좋았을 아이들이 자랍니다.
자기 앞의 생을 똑바로 응시하면서요. 테러리스트를 꿈꾸면서도 찰나에 불과한 인간의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믿으면서요.
그렇지요.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해야만 합니다. 모모처럼, 로자 아줌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