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 지음/문학과지성사/154면/1996
소설 ‘새’에는 엄마를 잃은 두 아이가 나옵니다. 우일과 우미,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아이들이란 뜻이죠. 하지만 그 이름을 지어준 엄마는 얼굴에 붉고 푸른 멍자국을 달고 살다가, 어느 날 아이들 곁을 떠났고,
새어머니와 함께 온 아버지 역시 아이들 곁을 떠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돌보면서 살아남습니다. 갈라지고 쪼개진 삶의 틈으로 아이들은 발 끝을
들고 세상을 내다봅니다.
여자로 태어났지만 남자 행세를 하며 여자와 함께 사는 이씨 아저씨, 행복에 멈춰서고 싶어 라디오를 듣는
연숙 아줌마, 딸 때문에 시들거리는 안집 할머니. 아이들에게 세상은 검은 천으로 가리워진 새장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두운 세상. 빛이 없는
세상. 그러므로 날개란 아이들에게 그닥 요긴한 물건이 아닐 밖에요. 희망과 꿈의 상징으로 쓰이곤 하던 날개는 우미와 우일에겐 더 이상 그런
의미가 아니었던 겁니다.
꿈속에서 나는 것에서조차 피로를 느끼는 아이들. 작가 오정희는 아주 예민한 촉수로 고작 12살밖에 안된
아이들의 내면을 더듬어 갑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우둘두툴한 자기 속내를 함께 더듬어갑니다.“세상에 한 번 생긴 것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으니까요. “아주 먼 옛날의 별빛을 이제사 우리가 보는 것처럼 모든 있었던 것, 지나간 자취는 아주 훗날에라도 아름다운 결과 무늬로,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나타”나거든요.
“부드럽고 둥글게 닳아지는 돌들, 지난해 나뭇잎 그 위에 애벌레가 기어간 희미한 자국, 꽃 지는
나무,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고 그 외로움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거죠. “밤새 고이고 흐르던 세상의 물기가 해가 떠오르면 안개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내려서 땅속 깊이 뿌리 적시는 맑은 물로 흐르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듯”,“어느 날의 기쁨과 한숨과 눈물이 먼 훗날의
구름이 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