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 지음/설중환 엮음/124면/소담출판사/2003년
‘금오신화’하면, 神話가 떠오르지만 실은 새로운 이야기라는 뜻의
‘新話’입니다. 우리나라 최의 소설로 일컬어지며 대학 입학시험 문제에 나오곤 해서 익숙한 느낌이지만 정작 내용을 물으면 우물쭈물하게 되죠. 이
책은 ‘만복사에서의 윷놀이[萬福寺樗蒲記]’, ‘이생이 담 너머를 엿보다[李生窺墻傳]’, ‘부벽정에서 노닐다[醉遊浮碧亭記]’, ‘남쪽의 염부주
이야기[南炎浮洲志]’, ‘용궁 잔치에 나아감[龍宮赴宴錄]’ 의 다섯 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야기를 살펴보면 아마도 이 책은
최초의 ‘판타지’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원의 노총각 양생이 부처님과 윷놀이 내기를 해서 처녀 귀신과 연분을 맺었다가 귀신이
떠나자 처녀를 그리워하며 산속에서 약초를 캐며 지냈더라는 이야기나 송도 선비 이생이 우연히 만난 최씨 처녀와 어렵사리 백년가약을 맺었으나
홍건적에게 아내를 잃고 슬퍼하다가 귀신이 되어 나타난 아내와 다시 사랑했다는 이야기는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는 아니죠.
다음
이야기들도 마찬가집니다. 부벽정에서 취해 놀다가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의 딸인 기씨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꿈에 염라대왕과 토론을 벌이고는
차기 염라대왕으로 뽑혀 간다는 이야기, 용왕의 초대로 용궁에 가서 글을 짓는다는 이야기 모두가 귀신이나 현생이나 이승이 아닌 저승이나 저 너머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보노라면, 김시습의 실제 삶이 겹쳐집니다.
매월당 김시습. 어린 시절부터 천재로 불리며
왕에게 총애를 받았지만 세조의 왕위 찬탈을 보고는 현실에서 떠나버린 사람이죠. 세종의 초대로 궁에 가서 시를 짓는 모습은 ‘용궁부연록’의
한생을, 평생을 이곳저곳으로 떠돌다 아내와 아들이 죽자 산속으로 들어가 살았던 그의 삶은 ‘만복사저포기’의 양생을 닮은 듯 합니다. 그렇게
보면, 염라대왕이 되었다는 ‘남염부주지’의 박생은 이승에서 좌절된 꿈을 이야기하는 듯해 어쩐지 마음이 애달파집니다.
'한쪽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악 이렇게 들어보세요 (0) | 2006.04.13 |
---|---|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 서서 (0) | 2006.04.13 |
폭풍의 언덕 (0) | 2006.04.13 |
새 (0) | 2006.04.13 |
오래된 미래 (0) | 2006.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