챈들러와 고양이
챈들러 스타일
매일 무얼 하며 지내냐고요? 쓸 수 있을 때는 쓰고, 쓸 수 없을 때는 안 쓰죠. 대개 아침이나 이른 오후 무렵에 글을 씁니다. 밤이면 무척 현란한 생각들이 떠오르는데 지속은 안 돼요. 오래 전에 그 사실을 깨달았죠. 작가들이 영감을 기다리지 않는 법에 대해 쓴 소소한 글들을 늘 보고 있습니다만, 비가 오나 날이 맑으나, 숙취에 시달리든 팔이 부러졌든, 그 사람들은 그저 매일 아침 여덟시에 자기들의 작은 책상에 앉아 할당량을 채우지요. 머리가 얼마나 텅 비었건 재치가 얼마나 달리건, 그들에게 영감 따윈 허튼 소리. 찬사는 보내지만 그들이 쓴 책은 조심스럽게 피하겠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나는 영감을 기다리는 편입니다. 굳이 영감이라고 명명할 필요는 없지만요. 생명력을 지닌 글은 모두 가슴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대단히 피곤하고 지칠 수도 있는 고된 일이지요. 의도적인 노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전혀 일이 아니지만. 중요한 건, 전업 작가라면 적어도 하루 네 시간 이상 일정한 시간을 두고, 그 시간에는 글쓰기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꼭 글을 써야 할 필요는 없어요. 내키지 않으면 굳이 애쓰지도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물구나무를 서거나 바닥에서 뒹굴어도 좋아요. 다만 바람직하다 싶은 다른 어떤 일도 하면 안 됩니다. 글을 읽거나, 편지를 쓰거나, 잡지를 훑어보거나, 수표를 쓰는 것도 안 돼요. 글을 쓰거나 아니면 아무 일도 하지 말 것. 학교에서 규칙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 원칙입니다. 학생들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하면 심심해서라도 무언가를 배우려 하죠. 이게 효과가 있답니다. 아주 간단한 두 가지 규칙이에요. 첫째, 글을 안 써도 된다. 둘째, 대신 다른 일을 하면 안 된다.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55-57
필립 말로의 정의
... 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정직한 사람이 타락한 사회에서 괜찮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입니다. 불가능한 싸움이죠. 이길 수는 없어요. 그는 가난하고 고통스러워지고, 농담과 사소한 불법으로 무마해 가며 살거나, 혹은 할리우드 제작자처럼 타락하고 사교적이며 무례해질 수 있겠지요. 오랜 시간 준비해야 하는 전문직 두세 종을 제외하면, 이 시대에 한 남자가 어느 정도 타락하지 않고, 성공이란 언제 어디서나 부정한 돈벌이이게 마련이라는 냉혹하고 명백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삶에서 적절한 풍족함을 누릴 방법이 전혀 없다는 씁쓸한 현실 때문이죠. 170-171
캘리포니아
...하지만 다문화의 현장에는 끔찍할 정도로 질립니다. 나는 교양 있고, 우아하고, 사회적인 식견도 좀 있으며, <리더스 다이제스트>보다는 조금 더 배우고, 삶을 자부심을 주방도구나 자동차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 좋습니다. 유대인을 믿지는 않지만 정말 착한 유대인은 아마도 세상의 소금일 거라는 점은 인정해요. 손에 술잔을 들지 않고는 삼십 분도 앉아 있지 못하는 사람들은 싫습니다. 헨리 포드보다는 붙임성 있는 주정뱅이가 더 낫기야 하겠지만. 나는 보수적인 분위기, 과거의 감각이 좋습니다. 미국의 지난 세대들이 유럽에 가서 찾아 헤매곤 했던 모든 것들을 좋아하죠. 그러면서도 규칙에 얽매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너무 많은 걸 바란다 싶은데, 결국 이렇게 쓰고 말았군요. 나는 마가렛 핼시가 영국에 대해 좋다고 말한 모든 것들을 좋아하고 그녀가 싫다고 한 것들 중에서도 많은 것들을 좋아합니다. 그건 내가 거기서 자라서 영국식 예절에 주눅이 들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나는 마가렛 핼시가 싫습니다. 혹은 부자연스럽고 용두사미로 끝나는 재담을 단순한 진실보다 낫다고 여기는 작가들 모두가.
191-192
편집자가 욕을 먹는 이유
나는 돈이나 어떤 특권 때문에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다만 사랑 때문에, 어떤 세계에 대한 이상한 미련 때문에 글을 쓰는 거죠. 사람들이 치밀하게 생각하고 거의 사라진 문화의 언어로 말을 하는 그런 세계 말입니다. 나는 그런 세계가 좋습니다. 194
기나긴 이별
물론 어떤 면에서 나는 오래전에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했어요. 사실 지난 이 년간 여러 번 한밤중이면, 그녀를 잃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임을 떠올리곤 했지요.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을 겪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속으로 작별을 고하는 것은, 실제로 눈을 감기며 다시는 그 눈이 뜨이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아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죽어서 기쁩니다. 이 자존심 강한, 두려움을 모르는 새가 남은 생을 웬 끔찍한 요양원의 어느 방 새장에 갇혀서 보내리라는 생각은 너무나 견디기 힘들어서 차마 그 사실을 마주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삼십 년 고 열 달, 이틀 동안 그녀는 내 삶의 빛이었고, 내 모든 목표였습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그저 그녀가 따뜻하게 손을 녹일 수 있게 불을 지펴준 것뿐입니다. 할 말은 이게 전부입니다. 222-223
자살 시도 후에 쓴 편지
누구더라, 아마도 스티븐슨 같은데, 경험이란 크게 봐서 직관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죠? 228
'밑줄긋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0) | 2014.12.17 |
---|---|
그의 슬픔과 기쁨 (0) | 2014.11.07 |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0) | 2014.06.11 |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 (0) | 2013.08.19 |
위화의 중국 (0) | 2013.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