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독서 취향으로 본 두 가지 인간 유형

양화 2013. 7. 16. 22:15

 

나는 한순간도 그녀가 그 책들을 다 읽진 않았을 거라고 의심하거나 그것들이 소장가치가 있는 책일까를 두고 의문을 제기하진 않았다. 더 나아가서 그 책들은 그녀의 마음과 성격의 연장선인듯 여겨졌다. 반면에 나의 책들은 나와는 기능적으로 분리된 것으로, 내가 장차 본받으려는 특성을 각인시키기 위해 압박을 가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 p. 46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안 반즈 지음, 다산책방

 

지난 해, 제법 판매고를 올린 외국 소설, 줄리안 반즈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하도 많이 이야기를 많이 들은 작가라 전작들을 몇 권 소장하고 있긴 한데, 번번히 다 읽기에는 실패했다. 복잡한 구성과 촘촘한 문장, 낯선 도입부는 번번히 책을 들었다놨다 하게 만들었다. 장르소설 같은 스타일리시한 제목, 경장편이라는 것, 소리소문없이 퍼져나간 입소문이 아마도 이 소설의 성공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그 입소문의 근거는 탄탄한 작품성이겠지. 불완전한 기억이 만들어내는 인생의 기이한 무늬 앞에서 속수무책인 인간들.. 정도로 요약할 수도. 줄리안 반즈의 나이가 나이여서일까? 노년에 대한 묘사는 정말 좋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내가 꽂힌 문장은 저 위 문장. 나는 서가의 취향으로도 인간의 유형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 위의 문장이 대표적인 두 유형을 보여주는 듯해서였다. 한 마디로 옳커니! 어떤 사람의 서가를 보면 그 책들이 모두 그 사람의 연장인 듯한 느낌이 드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 성격과 마음이 서가의 책들과는 분리된 채 오로지 그의 지향을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오랜 촌년 컴플렉스가 말해주듯, 후자다. 내가 허겁지겁 사 모은 책들은 내가 갖고 싶은 취향의 집합인 경우가 많다. 기를 쓰고 동경하는 어떤 것, 그런데, 애쓰지 않아도 애초에 그런 이들을 보는 마음이 어떻겠나. 어쩌면 삶의 비극은 거기서 비롯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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