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개인의 탄생

양화 2013. 5. 6. 16:29

 

토도로프에 따르면 15세기 플랑드르에서 시작된 개인의 출현은 알브레히트 뒤러에 와서 예술적으로 확연히 드러났다.

이 초상화에서 신은 인간을 재현하기 위한 핑계거리가 되었다.

 

수많은 모순들, 무한한 위대함과 비천함, 깊은 어둠과 기이한 빛으로 가득차 있는 존재, 연민, 감탄, 경멸, 공포를 동시에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신기한 존재를 발견하기 위해서, 나는 하늘과 땅을 두루 살펴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인간은 무無에서 솟아나 시간을 가로질러 신의 품 안으로 영원히 사라진다. 그가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그 두 심연의 경계 사이에서 인간은 잠시 방황할 뿐이다.

만일 인간이 자신을 완전히 모른다면, 인간은 조금도 시적詩的이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묘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자신을 명징하게 볼 수 있다면 , 그의 상상력은 할 일이 없어서 그림에 덧붙일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모습은 약간은 드러나 있어서 그가 자신에 대하여 무언가 조금 깨달을 수는 있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베일에 싸여 있어서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어둠 속에 파묻혀 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파악하기 위하여 그 어둠 가운데로 끊임없이 잠수한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보람없는 헛된 일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들 가운데에서 시가 옛 전설로 살아가고, 전통과 고대의 기억만으로 자양분을 삼으며, 독자와 시인 자신이 믿지 않는 초자연적 존재들로 세계를 채우려 애쓰면서, 그 자체의 모습으로 볼 수 있는 미덕들과 악덕들을 의인화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그 모든 자원이 시에게 결핍되어 있다. 그러나 시에게는 인간이 남아 있다. 시를 위해서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 알렉시스 드 토크빌 <미국 민주주의론>, '개인의 탄생' 중에서 p. 20-21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추구로 연대, 혹은 공통의 세계를 바라보는 동지는 어디 있을까, 하던 중이었다. 개인, 개성, 취향이라는 말이 대세를 이루는 요즘이 어쩐지 쓸쓸하다. 혼자서도 행복할 방법은 많겠지만 SNS가 봇물을 이루는 걸 보면 다른 이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건 아닐까. 츠베탕 토도로프가 대표 저자로 참여한 '개인의 탄생'을 집어든 것도 개인의 출현과 지금 상황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이 책 속에서 세 저자 츠베탕 토도로프(미술), 베르나르 포크룰(음악), 로베르 르그로(철학)는 중세가 끝나가던 무렵의 예술 장르와 철학 속에서 개인이 등장하는 모습을 포착해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책의 서문 격으로 쓰여진 글에서 토크빌을 만났다. 미국 민주주의론을 쓴 그 토크빌 말이다. 문득 민주주의의 기초가 개인이겠구나, 깨달음이 들었다. 개인의 출현은 대략 14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져 있다. 플로베르가 1861년 쥬네트 부인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한 구절에서처럼 "신들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그리스도는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키케로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르는 시기에 오직 인간만이 존재했던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토도로프는 15세기 플랑드르 회화에서 비로소 개인을 발견하는데, 그가 살펴본 화가는 인물의 개성이 사회적 지위에 따르는 품위에 의해 보장될 수 있는 가장 높은 사회적 신분에 속하지 않는 인물들의 초상화를 만든 첫 번째 화가들 중에 하나인 로베르 캉팽, 그리스도로 자신을 그려 신적인 것의 인간화됨을 보여준 알브레히트 뒤러 등이다.

 

하지만 토도로프는 이 개인의 발견이 주관의 자의성으로 환원된, 타인들과 고립된 개인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라고 말한다. 니콜라 드 퀴가 시사했듯, 여러 다른 길로 동일한 목표에 이를 수 있고 주관성이 공동체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기의 화가들은 동일과 사고방식과 해석의 코드를 공유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기독교 교리 안에서 어떤 대상, 어떤 몸짓의 규범적 의미를 잊지 않고 있다. 또한 그림에 의해 재현되는 공통의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다. 즉, 이때의 인본주의는 현대와 같은 개인주의가 아니라는 말이다.

 

어찌 됐든, 개인이 태어나면서부터 '본성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지녔다는 사상, 개인으로서의 권리가 모든 인간 존재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져있다는 사상, 혹은 인간이 인간으로써 자유롭다는 사상은 헤겔, 마르크스, 토크빌이 강조했듯이 근대에 와서야 사회 전체에 전파되었고, 함께 살기의 기본 원칙이 되었다. ... 그런데, 이런 원칙,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유롭다는 사상이 어떻게 공동체적 삶의 원칙으로서 정립될 수 있었던 것일까. (로베르 르그로, p. 116)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는 동안 사람들이 이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은 결코 게으름이나 비겁함, 용기 부족, 이성적 추론 능력의 부족 등 때문이 아니었다. 그때는 위계적 원칙과 공동체의 원칙이 관습을 지배하는 세계로써 위계적 공동체적 질서와 자연적 질서가 합쳐져 있었다. 이 안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소속 관계 속에 포섭된 존재로 비특수화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소속관계로만 자신을 파악할 수 있고, 모든 규범의 근거는 소속관계에 위배되는가, 그렇지 않은가 였다.

 

하지만 세계와 인간에 대한 새로운 경험에 의해서 자신을 점차 인간으로서 평등한 존재로 인식하고 자율적인 존재로 느끼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러운 것으로 주장되어온 위계질서에 대한 집단적 반발, 권위의 근거에 대한 집단적 회의, 개인적 소속 관계의 해이에 의해 개별적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출생은 어떤 권리도 부여해주지 못하고, 오직 개인적 노동에 의해 획득되는 자질만이 인간 사이의 구분을 정당화시켜줄 수 있다는 것을, 시민들은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것을, 정치적 권위의 근거는 이성이 올바른 사용에 있다는 새로운 담론이 출현한 것이다.

 

이제 인간은 모든 권위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욕망이 솟아났고, 이는 점점 더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토크빌은 이것이 세 단계에 의해 퍼져나갔다고 주장했다. 16세기에는 성서의 자유 검증을 통해 종교에서, 17세기에는 이것이 철학 내에서 방법적 원칙으로 성립되어 사회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면서 일상생활의 태도를 변화 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위계질서의 탈자연화, 권위의 탈자연화, 공동체적 유대의 이완은, 자신과 닮은 자로서의 타인을 경험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면 경험될 수 없는 일이었다. 타인을 특수화하지 않으면서 그의 인간성 속에서 그를 받아들이고 그를 비인간화하지 않으면서 그를 그의 개별성 속에서 파악하는 것 말이다. 타인의 유사성에 대한 이 원초적이고 암묵적인 경험, 혹은 타인의 인간성에 관한 이 현상학적 경험은 인류가 있은 이래로 있어온 것이지만 소속 관계 속에 개인이 포섭되는 근대 이전의 세계에서는 드러날 수 없었다. 

 

칸트가 밝혔듯, 한 사물에 대한 경험적 인식은 단순히 감각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사물이 포섭되는 경험적 개념을, 즉 오성개입을 전제로 하는데, 그 개입은 단순히 감각과 오성의 협력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판단 능력의 작용, 즉 상상력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나와 같은 인간성으로 경험하는 것은 유일하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은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다. 미학적 경험은 개별성의 보편적 경험이다. 우리가 사람을 조형적 형태로 볼 때 인간의 얼굴로서 의미를 잃는다. 그런데 근대에 와서 타인의 경험은 문명화된 인간은 타인의 신체를 생명을 가진, 육화된 주체성, 생각하는 신체로 파악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초이며 개인주의의 기초다. 이런 인식은 나한테 꽤나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이제 중세까지의 종교적, 공동체적 모든 복종에서 해방된 도덕적 행위는 인간 각자 속에 있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윤리적 감수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변화를 맞는다. 이때의 주체란 자신을 온전히 의식하는 의식으로서의 주체도, 그것이 원하는 것의 최고의 근원이 되는 의지로서의 주체도 아니다. 그것은 주체가 그 곳에서 자신이 사고와 판단과 행동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러한 주체성으로서의 주체도 아니다. 이런저런 소속관계에 따라, 혹은 이런저런 성향에 따라서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로서의 자아다.  

 

로빈슨 크루소가 진정한 근대 소설이 첫 작품인 까닭. 가족도 조국도 없이, 사회적 전통적 유대에서 풀려져 나와 오로지 살아남아야 하고 필요한 것을 얻어야만 한다는 요구에 의해서만 움직인 순수한 경제적 인간이 되어 합리적 주체의 본질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편견을 뛰어넘어 사물들의 진정한 관계에 대한 판단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그 사람처럼 고립된 인간의 입장이 되어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스스로를 판단의 근거로 생각할 때, 타인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행동하고 말하는 것, 즉 개인들 간의 관계로 짜여진 조직 속에 자신을 편입시키는 것, 예측할 수 없는 길들을 사려 깊게 여는 것, 자신의 뒤에 유일무이한 역사를 남기는 것이다. 위계적 원칙은 인간 각자가 태생적 소속관계로 인하여 그가 마땅히 되어야 하는 존재에 맞게 자신을 만들어 가도록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인간을 비인간화하려고 하고 인간 각자에게 자신의 인생을 운명처럼 느끼게끔 그를 부추기는 선입견들을 부추긴다. 자발적이고 분별있는 대화를 통해서 타인의 인식은 가능해진다. 하지만 그 성원들이 우선적으로 항상 서로의 말에 귀기울이기 전에 서로를 '이런 사람 혹은 저런 사람으로서' 지각하고 서로 바라보기 전에 포섭하고 말을 건네기 전에 서로를 인식하는 전근대적 사회에서는 타인을 그의 개별성 속에서 인간인 다른 한 사람으로 경험하는 일은 엄폐되어 있었다.

 

헤겔은 개인주의가 예술의 종말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리의 진정한 형태로 인식되는 자기 자신의 내면성에 의해서만 만족을 찾으려는 욕구에 정신이 사로잡혀 더 이상 예술은 세계와의 본질적인 관계를 정의해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근대의 예술은 또 다른 환상의 기원이 된다는 것이다. 자신을 행동의 주체로 발견하면서 인본주의는 인간 중심주의가 되었고 예술가가 창조의 샘을 자기 안에서만 찾는 동안 고갈된다. 이것이 헤겔이 예측한 예술의 종말이다.

 

이를 대체하듯이 등장한 것이 해석의 모험으로 연출가의 시대다. 이것은 현대 예술의 핵심으로 근대의 개인화가 지닌 애매성으로 인한 것이다. 어떤 인식도 도그마에 기반을 둘 수는 없기에, 자연적 혹은 초자연적 규범은 없기에, 어떤 법률도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초시간적 전범 속에서 규범을 발견할 수 있다는 환상은 점차 사라지고 대신 예술작품은 하나의 질문이 되었다. 반복과 묘사에서 벗어나 우리들 인간 조건의 수수께끼를 향해 바닥 모를 깊이, 심연을 향해 열려 있는 문이 된 것이다. 다니엘 살르나브가 말했듯,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것을 쓰기를 끝마친다는 것이다." 

 

작품을 읽는 것은 역사나 그 작품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대중으로도, 극단적 주관주의와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공동의 세계와 결별하고 주석 속, 문맥 속에서만 의미있는 예술은 예술을 빈곤하게 만든다. 공통의 의미를 더 이상 나누지 못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그래서 언어가, 예술이 중요한 것이다. 언어가 공통의 세계의 일부를 이루는 한 공통의 의미를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개인들의 공통의 세계이다. 토크빌의 말대로 민주주의 시대의 예술은 민주주의적 정신이 감각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만드는 하나의 형식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조건의 수수께끼를 향해 열려 있는 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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