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서평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양화 2008. 1. 29. 06:22

 

정미경 지음/생각의 나무/338면/2006

 

외로운 주인공은 언제나 저를 매혹합니다. 사실 그 매혹의 7할은 연민입니다. 인간은 본래 외로운 존재, 가족도, 친구도, 사랑도 그 외로움을 메울 수는 없다고 떠벌리고 다니지만 실은 그래서 완벽한 관계에 대한 추구, 완전한 사랑에 대한 갈망을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정미경의 소설집을 읽는 동안, 저는 내내 "그 사람이 아냐! 머저리!" 하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사랑과 관심이 아무리 목마르다손 그 사람은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도 소설 속 주인공들은 속절없이 자신과 자신이 가진 것을 하나씩 그 사람에게 내어 줍니다. 그게 결국 아픔이 될 거라는 걸 때 묻은 저는 차라리 아무것도 주지 말고 상처입지 말라고 그들을 소리없이 말려볼 뿐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자기 '삶을 전부 지불해도 좋을 그런 연민'('모래폭풍' p. 186)으로 그들을 맞아들입니다. 사랑과 관심을 얻기 위해 날달걀을 삼키기 시작한 스티브는 길 잃은 고양이에게(달걀 삼키는 남자), 전화상담을 하던 그녀는 K에게(무언가(無言歌)), 와이셔츠를 판매하던 그녀는 사기꾼 현수에게(모래폭풍), 불치병을 가장하고 그녀를 떠났다가 수년 후 한 통의 전화로 돌아온 그에게(검은 숲에서), 아이와 아내를 떠나보낸 그가 재이에게(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온기를 구하죠. 왜냐구요? "누구이든 안고 있는 동안은 그래도 따뜻"(검은 숲에서 p. 262)하니까요. 하지만 사랑과 관심이 사라지고 나면 곧 햇빛에 드러난 오래 묵은 미라처럼 순식간에 풍화되고 맙니다.

 

그래서 탄식합니다. "찬피동물조차 목숨을 걸고 몸을 비비고 싶어하는 온기. 왜 신은 피조물에게 좀더 뜨거운 체온을 불어넣어주지 않았을까. 어떡하라고 일생 동안 온기를 구걸하며 살아가게 만들었을까."(달걀 삼키는 남자 p. 150) 하고요. 그리고 깨닫습니다. "현수와 같이 살게 되면 내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하던 시절부터 마음 속에 쓸개처럼 달고 살았던 외로움은 사라져버릴 줄 알았다. 그런데, 어쩐지 그건 여전히 매달려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그의 마음에도 이만한 외로움은 있겠구나. 누군가와 함께 지낸다는 건, 서로가 자기의 외로움을 몰래 끌어안은 채 살아가야 한다는 걸 깨닫는 일이구나"(모래폭풍 p. 188)

 

그래도 그들은 살아갑니다. 남루한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비밀을 간직한 채(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p. 315), 혹은 한없이 사소한 것에 기대어 삶의 참담한 무게를 견디기도 합니다.(검은 숲에서 p 271) 소멸의 시점을 알지 못한 채 먼지와 안개와 진흙과 결핍을 익숙하게 받아들일 뿐이죠. 이제 그만. 언제든 내 존재를 부정해 나라는 사람을 없앨 수 있는 타인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 삶의 대부분 아픈 자신을 달랠 수 있는 건 자신뿐이고, 그럴 때 사람들은 제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며 오래오래 우는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붉은 꽃 한번 되어보고 싶어 우리는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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