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지음/문학과지성사/302면/2007
세상 일이 모두 뜻대로만 되어가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럼에도 믿었던 사람들의 사소한 배신이라든가, 깜짝 놀랄 만큼 천연덕스러운 나 자신의 위선이라든가, 그 위선을 변명해대는 허위의식 같은 걸 맞닥뜨리면 언제나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그럴 때마다, 세상은 나와 타인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지요. 그 사이의 간극이라는 건 우주만큼이나 넓고 깊어서 과연 만인에게 통용될 상식이나 보편성이라는 걸 과연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깊은 회의가 몰려옵니다. 겉은 낙관인 체 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기다렸다는 듯 회의와 불신을 내미는 것도 실은 지독한 자기 보호 본능의 소산이라는 걸 알아버린지 오랩니다.
일흔 넘어 여든을 향해 가는 노작가의 신작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가 까발리는 것들도 바로 그런 지점입니다. 형편 어려운 사촌 동생을 필요할 때마다 요긴하게 부리면서도 그게 나를 위해서가 그 애 형편을 위해서인 것처럼 하고 있다가 동생이 행복을 찾아 떠나자 비로소 마음속에 있던 자신의 상전의식을 눈치채는 '그리움을 위하여', 세입자의 당당한 위치가 어느새 거저나 마찬가지로 염치없이 살고 있는 더부살이 위치로 묘하게 변해가는 '거저나 마찬가지', 무의탁 노인들의 목욕 봉사를 주도한 주부회의 회장이지만 자신의 시아버지의 속옷을 오만상을 찌푸리며 집게로 옮기는 카타리나의 이야기 '마흔 아홉 살'이 대표적입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는 비행기 사고로 딸과 사위를 잃고 혼자 된 바깥 사돈과 손주들을 함께 키우게 된 친구를 찾아간 이야기 '대범한 밥상'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물질적으로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궁핍했던 시기를 고스란히 겪어온 노인들의 이야기입니다. 노인들의 욕망, 노인들의 후회, 노인들의 용서... 하지만 내 마음을 건드리는 건, 우리 나이의 사람들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노인의 '성찰'이지요. 친구에게 자신의 허위의식을 들키고도 "내 이중성은 용서받지 못할 거야. 난 왜 이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를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가짜인지 나도 모르겠는 거 있지.", "모든 인간관계 속엔 위선이 불가피하게 개입하게 돼 있어. 꼭 필요한 윤활유야."하고 말할 수 있는.
"남의 무관심에 익숙해왔기 때문에 남이 나를 부러워하기를 바라는 이렇게도 강력한 욕망이 자기 안에 숨어있는 줄을 미처 몰랐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안의 허위의식과 인간에 대한 회의, 이중성 등을 이렇게 순순히, 담백하게 인정하고 나면 더 이상 분노할 일도, 놀랄 일도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엔 내가 믿는 진실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믿는 각각의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 그게 일치하지 않는다며 낙담할 일이 없어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진 새록새록한 과거의 기억들은 여전히 그들을 여기 이곳에 생생하게 놓아둡니다. 이런 문장들을 쓸 수 있는 건, 그가 그런 과정을 거쳐 노인이 되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영감님은 먼산이나 마당가에 핀 일년초를 바라보거나 아이들이 재잘대고 노는 양을 바라보다가도 느닷없이 아, 소리를 삼키며 가슴을 움켜쥘 적이 있었지. 뭐가 생각나서 그러는지 나는 알지. 나도 그럴 적이 있으니까. 무슨 생각이 가슴을 저미기에 그렇게 비명을 질러야 하는지. 그 통증이 영감이나 나나 유일한 존재감이었어." "그래,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 "후남이는 알맞게 부숭부숭하고 따끈한 아랫목에 편안히 다리 뻗고 누웠다. 그리고 평생 움켜쥐고 있던 세월을 스르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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