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지음/문학동네/392면/2007
"세상에 무의미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세상은 온통 읽혀지기를, 들려지기를, 보여지기를 기다리는 것들 천지였다." 소리도 빛도 없는 고즈넉한 시골 밤길을 걷다가 하늘을 올려다 보면, 저 하늘은 왜 저리 광활한 것이냐 속절없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 무의미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군요. 문득 점점이 흩어져 있는 별들을 이어 이야기를 만들고 저기 수백만 광년이나 떨어져 반짝이는 별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자 별들은 이렇게 답합니다. "이 우주의 모든 것들은 연결돼 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한국에서, 일본에서, 독일에서 아마도 세계 곳곳에서, 과거와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순간이 어디에선가 만나는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문득 부딪혀 빛을 내는 순간. 그렇게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그 순간 우리가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인생은 신비"로운 것이지요. 자신에게서 세상은 언제나 멀어져가기만 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도, 잔인한 현실을 꿈으로 만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사람에게도, 그래서 인생은 공평한 것이지요.
91년 이후 방북을 목표로 독일로 보내졌다가 지도부의 와해로 그곳에 머물던 한 대학생 나, 그가 사랑한 정민, 독일에서 만난 나치를 겪었던 베르크씨, 독일 간호사 수출 때 독일로 떠나온 안젤라 아줌마, 광주학살을 기억하고 복수하려던 남자와 그의 결사조직(?)에 함께했다가 안기부 프락치로 흘러간 이길용이자 강시우, 그가 사랑했던 상희와 일본여자 레이, 그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들. 그리고 그들을 스쳐지나간 사람들. 그 가운데 미래를 살 수 있거나 영원히 과거를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들의 순간을 살아가지요.
사람은 누구나 우연한 존재가 된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는 법입니다. 자기 행동에 대한 필연적 원인과 배경, 결과를 견고하게 하고 싶어하는 본능은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인생을 두 번 살지요. "하나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 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모두 이 두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인 셈이죠. 거기에 절대적 진실이 어떻게 존재하겠습니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세계가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세계가 있다"는 것, "이 세계는 그렇게 여러 겹의 세계이며, 동시에 그 모든 세계는 단 하나뿐"이며 "그 세계가 바로 우리에게 남은 열망"이라는 사실, 따라서 우리 존재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이면서 동시에 하나인" 것입니다. 작가 말마따나 인생이 이다지도 짧은 건 우리가 항상 세상에 없는 것을 찾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내 삶이 누구에게 어떻게 수신될까 걱정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후회없이 살고 사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남는 것은 존재뿐이거든요.
'한쪽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0) | 2008.01.29 |
---|---|
영화야 미안해 (0) | 2007.12.03 |
친절한 복희씨 (0) | 2007.10.30 |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0) | 2007.10.23 |
ZOO (0) | 2007.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