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 유럽에서의 이 최후의 신뢰의 세월을 함께 체험한 일이 없는 모든 사람을 나는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세월 동안 우리들 각자는 시대의 일반적으로 융성에서 힘을 빨아들여 자기의 것으로 하였고 집단적인 확신으로부터 개인의 확신을 드높여갔다." p.
"계속 살아가려는 의지는 돈의 불안정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오스트리아에서, 저 혼란한 시절보다 더 예술을 사랑한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돈의 붕괴를 통해 우리 가슴 속의 영원한 것만이 참으로 영속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p. 362
"삶의 모든 측면에서 익명성을 지키는 것이 나의 욕구인 것이다... 나는 확신하고 있지만 한 인간의 육체적인 모습이 널리 알려질 때, 그는 무의식 중에 베르펠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자아의 '거울 인간'으로서 살려고 하게 되고 어떤 몸짓에도 특정한 스타일을 꾸며내려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외적인 태도 변화와 함께 내면의 진실성, 자유 그리고 친진난만성이 대개의 경우 없어져 버린다." p. 398
"어떤 때는 전진, 어떤 때는 후퇴하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빛과 그늘을 나눈다는 것은 멋진 일이었다. 그리고 훗날 히틀러가 나에게서 아무리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고 하더라도, 이 10년간은 내 자신의 의지에 따라, 가장 내적인 자유를 가지고 유럽인으로 살았다는 만족감 - 이것만은 히틀러라 하더라도 나에게서 몰수할 수도 파괴할 수도 없었다." p. 403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순간 바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바로 그 사실이 나에게는 은밀한 불쾌감을 주는 것이었다. 도대체 정말 이것으로 좋다는 말인가 하고 내 마음 속의 무언가가 물었다. 만약 인생이 이처럼 조용하게, 질서정연하게, 돈도 잘 벌고, 쾌적하게, 또 새로운 긴장이나 시련이 없이 계속되어 간다면 그것으로 정말 다 좋은가 하고 말이다. 내가 누리고 있는 특권적이고 완전히 안정된 생활은 오히려 나의 본질적인 자아와의 동떨어진 것이 아닌가. ... 모든 예술가들의 마음 속에는 비밀스러운 이중성이 도사리고 있다. 예술가라는 것은 인생에 거칠게 던져지면 평안을 동경하지만, 이제 평안이 주어지면 다시 긴장을 동경하는 것이다... 아마도 내 생각이라기보다 내가 알지 못하는 깊은 곳으로부터 찾아온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원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실현시킨, 나의 인생을 지배하는 어둡고 파악할 수 없는 힘이 그런 생각을 알아들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이미 그 힘은 그 생각에 따라, 나의 인생을 처절하게 때려부수고, 내가 그 잔해로부터 전혀 다른 인생을, 더욱 힘들고 더욱 괴로운 인생을 밑바닥부터 새로이 건립할 것을 강요하기 위해 손을 쳐들었던 것이다." p. 436-437
"내가 20년간이나 일을 했던 집이 있는 도시인 잘츠부르크를 지나갔지만, 나는 역에서 내려보지도 않았다. 객차의 유리창으로 산중턱에 있는 나의 집을, 지나간 세월의 모든 추억을 담아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그 집에서 사는 일은 이제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기차가 국경을 넘는 순간 나는, 성서에서 나오는 로트처럼, 내 뒤에 남겨진 모든 것은 먼지와 잿더미이며, 쓴 소금으로 굳어 버린 과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p. 495
"매일처럼 고향에서 구원을 청하는 외침 소리가 울려왔던 나날,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 끌려가 고문당하고 모욕 당하고 있는 것을 알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도와줄 방도가 없어 무력하게 떨고 있었던 이들 나날은 나의 생애에서 가장 무서운 나날이었다." p. 497
"오늘날에도 나는, 자유의 시대에 길들여져 굳어진 인간으로서 또 꿈꾸었던 세계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내 여권에 찍힌 어떠한 스탬프도 낙인처럼, 그들이 행하는 어떠한 심문이나 검사도 굴욕처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 (그렇다) 사람은 자신의 대지를 딛고 살지 않으면, 꿋꿋한 태도를 잃게 되며, 또한 불안해지고 자신감이 없어지게 된다.... 내가 여권을 상실한 날, 58세의 나이로 나는, 고향을 잃는다는 것은 경계선을 만들어놓은 한줌의 땅을 잃어버린다는 것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는 걸 발견했던 것이다." p. 503
"나는 자신에게 타일렀다. ' 도망쳐라, 너의 가장 깊숙한 내면으로, 너의 작업 속으로. 단지 네가 너 자신인 곳으로, 한 나라의 국민도 아니고, 이런 지옥 같은 도박의 대상도 아닌 곳으로 도망쳐라. 그곳만이 이 미쳐버린 세계에서 네가 가진 얼마간의 오성이 아직 합리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장소이다." p. 525
"일생 동안 인간적인 결합과 정신적인 결합을 위해 정열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깨뜨릴 수 없는 공동체를 필요로 하는 이 시기에, 갑작스런 고립에 의해 생애 처음으로 무용지물이라는 것과 고독하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과거의 것은 모두 사라지고, 성취된 것은 모두 멸망해 버렸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몸바쳐 살아온 우리의 고향, 유럽은 우리의 삶을 훨씬 넘어서 파괴어되어 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뭔가 다른,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시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지옥과 연옥을 지나아갸 한단 말인가!... 그 (전쟁의) 그림자는 내내 나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그림자가 밤낮으로 나의 모든 생각 위를 떠다녔다. 아마도 그 그림자의 어두운 윤곽은 이 회상의 서(書)의 많은 페이지 위에도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그림자는 궁극적으로 빛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벽과 황혼, 전쟁과 평화, 상승과 몰락을 경험한 자만이, 그러한 인간만이 진정으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 530-532
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지난 세기 가장 위대한 전기작가로 불린 슈테판 츠바이크. 그는 유럽의 계몽주의가 꽃을 피우던 시기의 끝에 2000년 유럽의 수도로 불린 빈에서 부유하게 태어났다. 빈은 "하층계급의 가장 가난한 사람까지도 미에 대한 어떤 본능을 이미 풍경에서나 또 인간적으로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 섭취하여 몸에 지니고 다녔다. 문화에 대한 이러한 사랑없이, 더욱이 예술이라는 인생의 가장 신성한 충일을 맛보고 음미하는 센스없이는 절대로 진짜 빈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p.40)는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빈의 역사적인 건물조차 "어느 것이나 그들 신체에서 떼어낸 영혼의 일부"(p.37)로 여겼다.
게다가 그는 유태인이었다. 하지만 선민의식으로 유랑의 삶을 고통이 아닌 축복으로 견뎌낸 선조와는 달랐다. 그는 "성스러운 옛책의 계율로부터는 뚝 떨어져 살았고, 옛날의 공동 언어를 쓰지 않았다. 자기들 주위의 여러 민족에 동화하고 융합하여 보편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던, 모든 박해로부터 평화를, 영원한 도주로부터 휴식을 얻기 위하여 조급하게 노력한", 20세기의 유태인이었다. 그리하여 그가 믿은 것은 그에게는 없는 민족도, 국가도 아닌 개인이요 인간이었다. 그는 "인간은 객체이며 자유롭게 태어난 영혼을 가진 주체"라고 굳건히 믿었다.
그래서 그는 "한 민족 또는 한 도시의 궁극적인 것, 가장 깊숙이에 숨어 있는 것을 안다는 것은, 책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며, 가장 부지런히 찾아다니는 것으로도 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단지 그곳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p.168)이라고 믿었으며, 그 가운데서도 "위험한 인물에 대한 특별한 사랑이라고 할까 호기심이라고 할까 하는 것을 전 생애를 통해"(p. 146) 추구했다. 그의 자서전이 그가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미워했던 사람들로 하나하나 쌓아올려진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것이다. 그는 오귀스트 로댕을 만나 일종의 난폭함과 도취로 이루어진 위대한 예술의, 아니 모든 지상의 성취의 비밀을 엿보고, 예술이 각 개인을 위로할 수는 있어도 현실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며 여윈 몸으로 적십자사에서 일하는 로맹 롤랑을 통해 예술'가'가 현실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배운다. 또한 예술의 탄생의 그 모호한 순간, 비밀의 순간을 알고 싶어 위대한 작가의 초고와 음악가들의 초벌 악보를 모은다.
진리를 추구하면서 한편으로 그 진리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던 프로이트가 마지막까지 정신적 각성을 지키려하는 것, 그가 갖고 있는 도덕적 용기 - 세상에 있는 영웅주의 중에서 다른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유일한 영웅주의 - 를 보고 인간의 존엄한 최후에 대해서 생각하며, 슈트라우스가 자기 자신에게 갖고 있던 추상적이고 오류없는 객관성, 그래서 섬뜩할 정도로 자신의 표현능력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그것을 적용하는 것을 보고 놀란다. 하지만 그가 생애를 통해 도달하려 한 인류의 '정신적 합일'은 두 번의 전쟁으로 점점더 그로부터 멀어져간다. 이 책은 그런 그의 절망이 한 켜씩 쌓여가는 것을, 그래서 점점더 견딜 수 없는 통증이 되어 가는 것을 그리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파리에서 지냈던 그는 말한다.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오늘날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파리뿐만이 아니며, 다른 유럽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수십 년 동안은 1차 세계대전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어딘지 음울한 그림자가 한때 그토록 밝았던 유럽의 지평선상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게 대하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대하는 신랄함과 불신이 침식해 가는 독처럼 잘려진 유럽의 몸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p.160-161) 전쟁을 통해 유럽은 삶의 욕구와 천진난만성을 잃었다. 그는 모든 분야에서의 진보가, 과잉이 전쟁을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가 처음으로 전쟁을 목격한 1914년 7월, 그가 지냈던 라이프찌히의 여름은 그토록 아름다웠단다. 그가 자서전을 갈무리하며 자신의 최후를 짐작하던 1939년의 영국 바쓰의 8월도 도전해오듯 멋진 것이었단다. 대지 위의 그 평화 위에서 그는 자신의 극이 극장에 올려질 때면 늘 따르던 불운 같은 운명을 감지한다. 그는 결국 "반쯤은, 운명은 어디를 가나 나의 뒤를 쫓아오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한번 달아나는 것에 대한 경멸감이 생겼기 때문에, 또 반쯤은 지쳐버렸기 때문에" 그의 삶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것이 그의 길이었을까. "운명이란 것이 우연과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청춘시절뿐이다. 나중이 되면 우리는 삶의 참된 길은 내면에 의해 규정되어 있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의 길이 아무리 엉망이고, 아무 의미도 없이 우리의 열망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듯이 보일지라도, 결국 그것은 우리 눈에도 보이지 않는 목표로 우리를 이끌어간다"(p. 220)고 한 것처럼.
'밑줄긋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의식 없는 생산력을 원해! (0) | 2007.07.15 |
---|---|
사춘기 (0) | 2007.07.15 |
말똥구슬 (0) | 2007.06.18 |
호모 히스토리쿠스 (0) | 2007.06.01 |
셜록 홈즈 험담? 숭배! (0) | 2007.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