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서평

목수일기

양화 2006. 4. 13. 03:45

 

김진송 지음/웅진닷컴/288면/2001년

목수는 과연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일까요? 단순 무식한 이분법이긴 하지만 가끔 궁금해지곤 합니다. 이런 질문을, 문학을 공부하고 미학을 공부한 문화연구자였다가 중년에 이르러 갑자기 목수가 된 지은이도 한번쯤 해본 걸까요? 시작부터 명쾌한 답을 내놓습니다. “나무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목수는 자연에 근접해 있지만, 자연을 말하지 않는다.”고요.

“숲을 빌미로 살아가는 많은 동물과 곤충과 벌레들처럼 나무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요. “생명주의자들의 찬미나 자연주의자들의 근심은 목수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아니다. 그들의 말이 목수의 행위를 뒤바꿀 수 없으며 그로 인해 찬양되거나 비난받을 일이 없다. 목수는 목수일 뿐이다.” 다른 직업을 가진 이들처럼 목수도 하나의 직업이고, 그런 경험을 통해 삶과 사람과 세상에 대해 배워갈 따름이지요.

처음엔 그저 심심풀이로 주워온 나무 모양을 두고 그리고 자르고 깎아서 물건을 만듭니다. 그 과정은 무엇을 만들어낸다기보다 나무 안에 숨겨져있던 모양을 발견해내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 과정에서 박달나무, 오리나무, 벚나무, 물푸레나무, 난대나무, 귀룽나무, 엄나무. 나뭇잎과 열매, 꽃으로 겨우 겉모습이나 가려지던 나무들은 그 재질과 속결로 자기 존재를 드러냅니다.

이제까지 익숙하게 보던 것들이 낯설게 보이는 경험. 그 경험이 좀더 넓혀준 세상. 목수의 일기 속에는 그런 게 담겨있지요. 가끔은 단정적인 말투, 이건 나만 알고 있는 거지 하는 느낌의 오만함, 자기 자신조차도 가끔은 비웃고 싶어 하는 듯한 지나친 객관성이 느껴지더라도, 그로 인해 한 뼘쯤 넓어진 세상이 고맙습니다. 이름을 불러주자 내게로 와 꽃이 되어주었다던 싯귀처럼 이름 불러주길 기다리는 것들이 세상엔 참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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