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효서 지음/마음산책/222면/2002년
단순하고 정갈한 표지 한 가운데는 난로 위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도시락들이 있습니다.
그 밑에는 “맨 밑의 아이는 탈까 봐 공부 못하고, 맨 위의 아이는 안 데워질까 봐 공부 못하고”라고 적혀있습니다. 금방 그 도시락이 놓인
교실의 풍경이 떠오릅니다. 튼튼하게 생긴 무쇠 난로가 피워올린 온기로 교실은 은근히 따뜻하고, 아이들은 가까워온 점심시간에 조바심과 기대감으로
설레고 있을 테지요.
그 풍경이 만들어내는 따뜻함은 입가에 어느새 웃음이 떠오르게 하고, 그런 시절을 공유한 사람들의 입에서 저마다
한 마디씩 사연을 이끌어냅니다. 과거로 들어가는 통로. 저자가 머리말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사물에는 추억이 깃들고 그래서 사물 자체는 모두
과거로 들어가는 통로가 됩니다. 테레비, 주전자, 연필, 시계, 주걱, 라디오, 담배, 책상. 너무 평범한 이 사물들은 징검다리가 되어 우리를
한 작가의 과거 속으로 데려갑니다.
못 생기고 불편하게 생긴 의자 하나를 보고, 아버지와 아버지의 죽음, 탄생의 신비, 그리고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그리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렇게 하나씩 없어지는 것을 겪는 것이라고 쓸쓸하게 이야기합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얻게 된
손목시계를 타고 자신이 태어난 그 시간으로 돌아가보는 정경에는 눈물이 핑 돕니다. 젓가락 이야기에는 난데없이 조청 훔쳐 먹으려다 양잿물 먹은
사연이 딸려나옵니다.
양변기를 김치 냉장고 쯤으로 취급해 김치 그릇을 그 안에 동동 띄워놓았던 이웃 할머니 이야기를 할 때쯤이면,
어느새 주위를 둘러보게 됩니다. 저렇게 허투로 놓여있는 책 한 권, 볼펜 한 자루가 지나가고 있는 지금의 내 삶을 기억해주지 않을까 싶어서지요.
그 사이로 인생은 지나갑니다. 책의 첫 장에 놓인 말을 떠올립니다. “지금 내 곁에 놓인 옹기 재떨이, 그것은 미래의 그 누군가가 기억하는 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