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서평

리버 타운

양화 2006. 4. 13. 03:40

 

피터 헤슬러 지음/강수정 옮김/눌와/496면/2003년

자신이 나고 자란 자리를 떠난다는 것은, 나아가 떠돌며 사는 것을 삶의 방식으로 택한다는 것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든든한 울타리 하나를 기꺼이 포기하는 일일 듯 합니다. 미국 평화봉사단의 실체나 그 단체가 수행하는 일의 정당함 여부를 떠나, 다른 곳으로 떠나는 사람에 대한 연민이 먼저 솟구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여기, 백인이면서 미국인이고, 영어권역이라면 다 통할 최고 학벌을 가진, 그것도 남자인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근대화의 물결이 휘몰아치는 중국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 영어를 가르치러 갑니다. 처음에는 “글쓰기에 도움이 될 것 같고 중국어를 익히기 위해”서였지요. 물론 자신의 할아버지가 중국에서 선교사로 살았기에 중국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에게 중국은 처음에 그저 ‘타국’이었을 뿐입니다. 다른 무슨 의미를 붙인다 해도 전 이 책이 그 쭈삣한 손을 내밀어 이문화와 나누는 아주아주 긴 인사라고 생각합니다.

이해할 수도, 이해하기도 어려웠던 이국의 사람들과 문화에 그가 어떻게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가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타국에서 살아야하는 긴장과 두려움이 만드는 불친절함이 조금씩 사라져갑니다. 마치, 부분적으로 이해되던 중국정부의 선전문구가 한 글자씩 온전히 풀이되어 마침내 이해할 수 있는 완전한 문장으로 변하는 것처럼. 게다가 저널리즘적인 균형감각과 감수성이 풍부한 문장이 더할 수 없는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가령, 쇠락한 봉건귀족의 묘를 보고 “이 웅장한 묘에는 어린 옥수수가 유일한 제물이고, 대나무 줄기 사이로 삐걱대며 지나는 알 수 없는 바람소리만이 유일한 기도이다”라고 쓴 것을 보면 봉건 귀족이 영화를 누리던 전근대 사회에서 해방 후의 혼란기, 문화혁명기의 스산한 세월이 그려집니다. 그런 문장을 읽고 나면, 그가 완전히 우성인자로만 이루어진 인간이고, 그래서 갖게 될 왜곡된 관점은 그냥 넘겨버리자, 하는 마음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