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러갔다

브로크백 마운틴 - 사랑은 늙지도 않아

양화 2006. 3. 27. 23:48

 

그 불빛을 알고 있다. 어둠에 잠긴 먼 산, 긴 선을 그리듯 빛이 하나 흘러간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보노라면, 인생은 이런 거지, 어두워서 잘 안 보여 앞에 무엇이 있을지 결코 알 수 없지, 그리고 넌 혼자서 가야 해, 누군가 나직이 일러주는 듯한 그 불빛. 브로크백 마운틴은 어슴푸레한 배경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자동차의 불빛으로 열고 닫는다. 사무치게 외로운 그 느낌. 초등학교 2학년 때, 육지에서 한 열 두 시간쯤 배를 타고 가야 나오는 섬에서 살 때, 나는 그 불빛을 본 적이 있다.

 

막내 동생이 아직 태어나기 전 엄마랑 오빠, 동생은 육지에 볼 일이 있어 나가고 나 혼자 아빠랑 집을 지켰다. 오빠는 말 못할 사정으로, 동생은 막내라서 엄마가 긴 외출을 해야 할 때는 함께 갔다. 아빠와 집을 지키는 건 내 몫이었다. 아빠 심부름으로 소주랑 내가 먹을 밤빵을 사가지고 언덕 위에 있는 우체국 관사로 걸어올라가다 문득 뒤돌아보면 멀리 컴컴한 항구에 정박한 배의 불빛들이 낮은 파도에 일렁이곤 했다. 그걸 보노라면 문득 슬퍼져서, 엄마가 없다는 것도 슬프고, 캄캄한 밤에 혼자 걸어가는 게 무섭기도 해서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 거길 바라보다 집에 들어가곤 했다.

 

겨우 9살이었지만, 그때 난 삶이 엄마도 없이, 아무도 없이 어두운 길을 혼자서 걸어가는 것이라는 걸 저절로 알았다. 저 멀리 반짝이는 불빛들은 저마다 그렇게 살아가는 영혼들이라는 것을.

자기 앞에서 탁 닫히는 문 같았던 세상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모르는 에니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주어진 것에 저항하지 않았던 잭. 그 둘은 산에서 만난다. 거긴 아무도 없었다.  그 둘 뿐이었다. 끼니를 챙겨줄 사람도, 늦게 돌아왔을 때 걱정해줄 사람도, 음정도 맞지 않는 노래를 부르면 소박한 장단을 맞춰주고 잘 한다고 추임새를 넣어줄 사람도, 외롭고 서러웠던 삶의 상처를 위로해줄 사람도 단 한 사람뿐이었다.

 

밤새 양을 지키면서 잭이 저 멀리를 바라보면 거기 에니스가 한 점 빛으로 존재했고, 에니스가 낮에 설겆이를 하다 산 위를 올려다보면 양떼 사이를 지나가는 말 탄 잭이 있었다. 그들은 거기에 상대가 있다는 것 자체에 안도했다. 그 둘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누구를 사랑해야 했을까. 아무것도 없이 누군가를 완전하게 사랑했던 그 경험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를 다시 볼 때면 언제나, 그토록 아팠고 그렇게 환희에 찼던 선연한 사랑의 감각이 돌아오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20년이 지나도 늙지 않는다.

 

종일 초조한 얼굴로 잭을 기다리던 에니스가 트럭 소리를 듣고 뛰쳐나가 격렬하게 서로를 안을 때의 모습, 말을 싣고 약속장소에 도착하는 에니스를 따라 환하게 밝아오던 잭의 얼굴 이후로 둘이 등장할 때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폭발하는 지점은 같았다. 둘이 말을 타고 브로크백 마운틴을 아무말없이 돌아보던 장면과 방목 시절 서서 졸고 있는 잭을 에니스가 뒤에서 안아주던 장면. 늘 사랑을 호소하던 잭도, 늘 결정적인 말은 하지 않던 에니스도 두 장면에서는 완벽하게 교감하고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사랑이, 혹은 가족이 그것을 구원해줄 거라고 믿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에니스는 그걸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 완벽한 교감의 '순간'만이 영원할 뿐인 것이다. 그 기억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다. 알마도, 알마 주니어도, 잭의 아내 로린도, 로린의 아버지도, 그리고 잭의 부모님도 그들은 모두 외로웠다. 어슴푸레한 산을 배경으로 선을 긋듯 달려가는 외로운 불빛처럼. 왜 우리는 늘 추운 곳에서만 만나야 하냐며 널 보고 싶어 때때로 견딜 수가 없다고, 20년이나 그리워하는데 지쳤다는 사랑의 고백을 남기고 갑작스레 사라져버린 잭에게 에니스는 무엇을 맹세하고 싶었던 것일까.

 

추억은 언제나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20년이 넘게 에니스의 피가 묻은 셔츠를 품에 안고 있던 잭의 셔츠는 에니스의 장농에서 에니스의 품에 안겨있다. 처음 그 셔츠를 보았을 때 에니스는 코를 묻고 "연기와 산 깨꽃과 잭의 땀 냄새를 기대했으나 잔존하는 냄새는 더 이상 없었다. 남은 것은 오로지 그 기억, 이제 손에 들고 있는 것 말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마음 속의 브로크백 산 뿐이었다" 영화 속에서 그 기억은 장농 안에 브로크백 산 풍경이 담긴 그림엽서와 함께, 딸 아이가 벗어놓고 간 웃옷과 함께 넣어진다. 에니스가 맹세하고 싶었던 것은 바꿀 수 없다면, 견뎌야 한다는 것. 네가 없어도 그 기억으로, 그리고 내가 가진 현재를 가지고 살아가겠다는 것이 아니었을지. 누군가를 살아가게 할 기억을 담아둘 장소로 장농 안은 결코 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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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후배가 영화를 보여주었는데, 어찌어찌해서 앞 부분을 못 보게 되어 한 번 더 보게 되었다. 두 번 다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잭이 떠나고 검은 프레임 안에 갇혀 헛구역질을 해대던 에니스, 8월 중순인데 하산해야 한다는 말에 화를 내며 죄없는 나뭇가지로 땅을 파는 모습, 늙은 잭이 옛날 자길 안아주고 양을 치러 떠나던 에니스를 바라보듯 자기의 삶으로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잭, 세상은 폭죽으로 화려한데 어두운 밤 하늘을 배경으로 아내와 아이들과 멀리 떨어져 어찌할 줄 모르고 서 있던 에니스, 싸구려 식당에서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혼자 밥을 먹던 에니스의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 기타 연주법을 뭐라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줄을 세게 당기기만 하고 놓지 않거나 아주 살짝 놓아 긴장감이 목 안쪽 가득 고인 상태를 연거푸 두 번이나 거치면서 시작된 오프닝 음악을 시작으로 에니스의 이혼 소식을 듣고 신나서 달리는 잭이 차에서 듣던 King of the road나 상처 받고 다시 그 길을 되짚어 돌아오며 울면서 듣던 그 노래 A love that will never grow old, 마지막 자막이 올라갈 때 나온 노래 He was a friend of mine, The maker made 까지 주옥같은 음악도 모조리 가슴이 남아있다.

 

다시 보기 전에 원작을 소설로 읽게 되었는데, 아주 짧은 이 소설을 영화는 아주 구석구석까지 그대로 살렸다. 심지어 둘이 헤어지던 날 몰아치던 바람까지. 원작에는 있지만 영화에는 없는 장면은 잭이 아버지에게 오줌 세례를 받았던 것, 에니스 아버지 일화와 함께 이 이야기는 동성애와 함께 이 소설이 율법의 세계, 아버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을 더 부각시키고 있다. 영화에는 있지만 원작에는 없는 것은 에니스가 딸 아이가 함께하는 장면 거의 모두다. 책을 읽은 덕에 두번째 영화를 볼 때는 텐트 안에서 처음 사랑을 나눌 때 에니스가 자기 손에 침을 뱉는 장면까지 보게 되었다. (쑥스럽게 그런 장면이 눈에 쏙쏙 들어오고 그런다냐.. -.-;)

 

역시 여성작가라는 느낌을 주었던 대목은 에니스와 알마가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던 모습을 간단하게 묘사한 장면에서였다. 난 알마가 에니스가 게이라서, 자기를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게 도화선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책은 그 과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흘낏 보았던 그 포옹, 처자식과는 휴가 한번 가지 않으면서 잭 트위스트와는 일년에 한 두번씩 가는 낚시여행, 바깥에 놀러나가는 것도 꺼리는 것, 급료도 낮고 일하는 시간도 긴 목장 일에 대한 집착, 벽을 향해 돌아눕고 침대에 눕자마자 자는 성향, 관청이나 전기회사에서 쓸 만한 영구직을 찾지 못하는 것" 그 모든 것들로 인해 알마는 서서히 깊은 나락에 빠졌다. 불과 서너줄에 불과한 이 내용에 부부 사이의 균열이 어떻게 시작되고, 그 관계가 어떻게 침식되어가는지 확연히 보여준다.

 

물론 나도 사랑이 삶의 전부라거나 그것이 가장 큰 고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게 다른 것보다 덜 고통스러울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그것이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어떤 것. 같이 있을 때마다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을까, 누군가 의심하지 않을까 염려해 지나가는 트럭에조차 마음 편할 수 없다면, 더군다나. 여백으로 가득 채운 화면이나 장농 문에 붙어있던 브로크백 마운틴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가까워졌다가 슬그머니 멀어지는 장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구름이 낮게 드리운 하늘을 배경으로 아슬아슬해 보이는 바위 투성이 길을 걸어가는 모습 등 곳곳에 감독의 능력이 돋보이는 장면들이 넘쳐난다.

 

히스 레저의 연기는 참으로 훌륭했고, 제이크 질렌할의 눈빛은 참으로 다정했다. 원작처럼 촌스러운 느낌의 잭이었다면, 별로였을 것 같다. 이 세상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브로크백 마운틴의 정경은 그대로 하나의 멋진 오브제이자 배경이자 메타포가 되었다. 책의 결말은 사랑으로 한걸음 더 갔다. 하지만 영화에서 에니스는 사랑과 삶 사이에 섰다.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훨씬 좋다. 당장 죽어도 딸 외에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 같고, 아무것도 남길 것도, 남을 것도 없는 그런 삶을 살면서도 그에게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것만 같다. 누구의 삶인들 그렇지 않을까.

 

***

노출이 심하다거나 쇼킹한 장면이 나와서는 아니지만 어쨌든 충실하게 사실적인 동성애 장면이 등장하는 이 영화가 15세 관람가를 받은 것이 인상적이다. 그러니까 그런 장면들, 남자 둘이 좁은 텐트 안에서 어떤 일을 벌일지는 이제 모르지 않는다는 거다. 우리들은 이미 다른 이성애 영화에서도 어색하게 연결된 두 장면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지, 뽀얗게 가려놓은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지 않는다. 여성과 남성 사이의 감정이 인정받는 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육체적인 관계만큼은 끊임없이 비밀로 하려고 했던 영화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이건 굉장히 뜻밖이다. 그러니까 남자 둘이 사랑할 때 어떤 일을 하는지는 이제 보여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둘 사이의 감정은? 그건 받아들일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