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젊은이에게

양화 2005. 11. 22. 15:52

 

2004, 싹트는 날개, 김형태

 

내가 꿈을 이루는 최선의 방법은, 손가락에 피가 나도록 기타 연습을 1년 정도 해보고

결판을 내는 것이 아니라,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그 꿈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최선의 노력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결코

잊지 않는 것'입니다.

 

너, 외롭구나, 김형태 지음, p. 247-249

 

황신혜밴드라는 쇼킹한 그룹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알려진 김형태씨를 만난 건,

산울림 팬클럽 모임에서였다. 친구가 산울림 열성팬이라 팬클럽 모임에 종종 가곤 했는데

심심해서 그랬는지 자주 나를 데려갔다. (저 결혼하고 나니 안 데리고 다니더라~, 남편을

데리고 다니나?) 송파에 있는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록페스티벌을 할 때, 김형태씨가

우리 바로 앞에서 어찌나 공연을 '즐감' 하시는지 불편한 다리로 마구 흔드시다 그만

개구리처럼 납작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여럿이 도와 그를 일으켜주었지만

언짢다거나 부끄럽다거나 계면쩍은 얼굴이 아니었다.

그후 몇 번, 산울림 팬클럽 결성 몇 주년 기념 모임으로 홍대 앞 클럽에서 있었던

작은 콘서트에서도, 문막의 김창완씨 농가주택에서 있었던 밤샘 공연에서도 그를 보았다.

언제나 찌든 얼굴이었다는 생각은 드는데, 눈이 반짝거리고 늘 뭔가를 장전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가 개인 홈페이지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카운슬링을 시작했고, 그 가운데 몇 편이

화제가 되어 일반 포털 사이트에서도 옹호와 비난이 오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내용들이

책으로 묶여나왔다. 충고, 라고 하면 좀 시건방져 보일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나도

젊은이들에게 주는 글 성격의 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으므로 이 책이 나올 때부터

관심을 갖고 있다가 이제사 읽었다. 카운슬링을 청한 청년들의 글은 참으로 전형적이고,

김형태씨의 답변은 참으로 속시원했다.

 

그 가운데 저 구절이 눈에 띄었다. 이 말은 '도중하차의 유혹을 이기는 방법'을 묻는 어느

대학생의 글에 답하면서 나온 말이었다. 저 똑같은 말을 나는 다른 사람에게도 들은 적이

있다. 그가 한 말은 정확하게 "꿈을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결코 잊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매일 아주 작은 일을 한 가지씩 하는 것이다"였다.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하고, 배우도 하고, 공연기획도 하는 김형태씨는 한쪽 다리가 불편하기도 한

장애우다. 그래서 그가 꽤나 풍요한 경제적 조건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는

아주 열악한 경제적 환경에서 성장했고, 계속 그렇게 살아왔다고 한다.

 

그는 어릴 때 꿈이 화가였지만 학원을 보내줄 수 없는 엄마에게 딱 두 달만 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다. 두 달 동안 그 학원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학생이 되어 그 뒤로는 공짜로 다니겠다는

계획이었고, 그는 계획대로 했다. 목표하던 홍대 회화과에 들어가서는 매일을

계란과 우유 한 개로 끼니를 때웠다. 홍대 한 쪽 벤치에서 날계란에 우유를 먹고 있던

그에게 선배가 무얼 먹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형, 이렇게 날계란하고

흰우유하고 먹으면요, 200원이면 되는데, 소화가 잘 안 돼서 하루종일 배가 안 고파요, 헤헤."

그는 그후로도 거의 10년 동안 하루에 라면 한 개로 때우는 생활을 계속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기억 속에서 그 10년은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았다고 한다. 정말 가난한 것은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목적을 향한 전략적 삶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삶, 멋지다!

'밑줄긋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0) 2005.12.05
역사는 거짓말쟁이  (0) 2005.11.24
현실의 해석  (0) 2005.11.16
나는 여성이다!  (0) 2005.11.09
크나큰 슬픔  (0) 2005.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