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현실의 해석

양화 2005. 11. 16. 17:10

 

 

... <시티 오브 갓>은 자신이 현실과 맺는 관계의 직접성을 끊임없이 주장한다. ...

이 주장은 그러나 의심스럽다. 이 영화가 현실에 얼마나 가까운지를 판별하는 일은,

평자가 할 일이 아니며 그럴 능력도 없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어도, 그것이 극영화를

거치는 순간, 현실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해석이 된다.

 

... 나는 이 영화의 현란하고 과도한 폭력 묘사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진실한 것으로

포장하는 텍스트 안팎의 수사에 반대한다. ... <시티 오브 갓>은 (감독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화의 베일을 벗어던진 (유사)현실이 아니라, 현실성을 포장함으로써 더 간교해진 신화다.

 

<씨네 21> 528호, '간교한 유혹의 기술', 허문영 지음, p. 104-105

(* 표시가 있는 괄호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단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이런 얘길 하긴 좀 그렇지만, 영화 소개에서 이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혹은 이 영화는 실화다, 이런 문구를 보면 이상하게 불편했다.

속으로 왜 그럴까 했는데, 씨네21의 본격 비평칼럼 가운데 하나인 '전영객잔'의 이번 호 내용을

읽다가 그 이유를 알았다. 바로 '실화다'라는 것이 감추고 있거나 의도한 바가 짚여서였다.

 

'너는 내 운명'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해서, 한동안 들끓었다. 영화만 조용히 보고 말면

그만일 것을 사람들은 그게 실화라는 데, 그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나 뒷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게 다 이노무 인터넷 덕분이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달갑지 않은 현실들.

한 인권 단체에서는 그 영화의 내용이 어디가 어떻게 현실과 달랐고, 그 영화의 내용이

에이즈 환자의 인권을 유린했으며, 어쩌구 저쩌구... 기분이 정말 개운치 않았다.

 

물론 문학이나 영화 같은 예술 장르가 우리들이 세상과 인간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는 걸 부인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한편의 영화가 때로는 세상을 바꾸거나

세상에 대해 발언하게 하는 실천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현실을 반영하거나 해석할 수 있을 뿐이지, 그게 현실 그대로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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