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와우 북페스티벌을 했겠거니, 아련하게 생각해보았습니다. 매번 9월 초 주말이면 홍대앞에서 벌어지는 책 잔치. 하는 일이라곤 바퀴 달린 작은 여행가방 하나 끌고 출판사 부스들을 둘러보며 그동안 눈독 들였던 책을 싸게 사오는 게 다였지만 말예요. 책을 사는 데도 요령이 있어서 처음부터 책을 사다 보면 무겁고 지치고, 또 충동구매를 하게 되기 때문에 일단 출판사 부스들이 늘어선 주차장 골목을 책 구경도 하고 뭘 살까 눈도장을 찍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훑은 후에 다시 되짚어 돌아오면서 책을 사는 거지요. 그러다 더러는 애초에 눈도장 찍어뒀던 책이 아닌 엉뚱한 책을 집어들고 오기도 하지요. 집에 돌아와서 짐보따리를 풀어보고는 아차, 그걸 빼먹었네, 하기도 하고, 몰랐던 좋은 책을 구했으니 땡 잡았다고 흐뭇해하기도 합니다. 이러나 저러나 가을 하늘과 맑은 날씨, 여유롭고 기분 좋은 웃음을 띤 사람들, 무엇보다 보기만 해도 배부른 책구경 때문에 가을날 한나절을 보내기 그만이었어요. 더러 마련해놓은 전시물을 구경하기도 하고, 어느 해인가는 사람들이 엽서에 직접 쓴 사연 비슷한 것이 빨래처럼 줄줄이 걸려있는 걸 찬찬히 읽어보기도 했어요.
그 페스티벌에는 책과 관련된 참 다채로운 행사가 있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은 언제나 이런 것뿐이었어요. 차갑고 단단한 것, 변하지 않는 것. 제 아무리 좋아하는 책의 저자라도 그와의 만남은 피하고 싶었고 - 그는 책이 아니니까요, 제 아무리 좋아하는 책을 함께 좋아하는 독자라도 직접 만나는 건 별로였어요 - 그들이 읽은 책은 나와 다른 것이기 십상이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제겐 책이 유일한 것, 변하지 않는 것, 배신하지 않는 것, 절대적인 진리의 현현 같은 것이었어요. 책 속에 그런 것이 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변하는 사람, 변하는 세상, 무의미해보이기만 하는 매일의 일상은 믿을 수 없었어요. 오로지 의미는 책 속에 존재하고, 책을 통해 발견되는 것이었지요. 하루키가 싫었던 것은 그래서였어요. 그는 세상 어떤 것에도 어떤 의미도 없다고, 다름 아닌 그의 '책'에서 계속 말하고 있었거든요. 다른 모든 책들이 내가 말하고 있는 이것이 유일한 세상의 의미, 인간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와중에 말이지요.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조차도 "내 얼굴도 내 마음도 누구에게나 의미 없는 시체에 지나지 않았다"(193)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거든요. 그 말에 이어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마음과 누군가의 마음이 스쳐 지나간다. 안녕, 하고 나는 말한다. 안녕, 하고 저쪽에서도 대답한다. 그것뿐이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아무도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193)
하루키의 자전적 소설 두 편, 이라는 광고 문구가 붙어 있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표제작과 "1973년의 핀볼". 두 개의 이야기 모두 의미라곤 없는 이야기지요. 여자와 남자가 등장하지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죠. 친구가 등장하지만 우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아요. 사회는 어떨까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장소라고는 작은 집과 사무실, 맥주와 포테이토칩을 먹을 수 있는 바가 전부지요. 아, 음반가게와 바닷가, 공원, 식당 등이 잠깐씩 나와요. 가족은? 주인공의 친구 쥐는 부자를 경멸하는데 아버지가 부자이고, 주인공의 아버지는 오로지 구두로만 등장합니다. 심지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처음에 등장하는, 주인공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소개한 소설가 데레크 하트필드는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도 아니에요. 게다가 그는 아무것도 낳지 못하는 "불모"의 작가죠. 살았다는 사실도, 죽었다는 사실도 누구에게도 화제가 되지 못한 그런 사람이었죠. 하트필드는 좋은 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답니다. "글을 쓰는 작업은, 단적으로 말해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물과의 거리를 확인하는 일이다. 필요한 건 감성이 아니라 '잣대'다."(12) 잣대를 들고 겁에 질려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한 이래, 그는 많은 것을 내팽개쳐왔지요. 글을 쓰는 일도 그에겐 그런 일들 가운데 하나였을 거에요. 하지만 글을 쓰는 일은 그럭저럭 할 만한 일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삶이 힘든 것에 비해 그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너무 쉬운 일이라면서요.
그 대목을 읽고 저는 아.. 그럴지도 모른다, 하루키를 잘 읽어보아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소 뱃속에 있는 풀 한 줌을 모셔놓고, 왜 소는 이렇게 맛없어 보이는 풀을 소중하다는 듯이 몇 번씩이나 되새김해서 먹고 있는 걸까, 생각해보는 저자의 마음에 제 마음을 슬쩍 얹어보면서요. 그래, 쓸모를 다해 교체된 전화선 배전반을 호수에 던져놓고 애도식을 치르는 것을 보고 이게 뭐야, 하고 생각하지 않기도 한 거에요. 1973년의 핀볼기계를 찾아 헤매는 청년의 집요함에도 결국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아니 애초에 의미를 찾겠다는 마음조차 먹지 않았어요. 먹고 마시고 섹스하고 의미없는 대화를 나누는 이 "똑같은 날의 똑같은 되풀이"를 거듭 읽으면서 필연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라는 세상 따위는 진작에 끝났다고 되뇌었어요. 아니, 그런 건 애초에 없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봅니다. 인간의 삶은 세상과 사람들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이 무의미함을 견디는 일일 뿐이지요. 모험은 상처를 안겨줄 뿐이지요. 그러니 나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비슷비슷해보이는 삶, 그 끊임없는 반복. 그런데 그 반복마다 생겨나는 작은 차이들, 그 차이가 어떤 식으로든 세상을 바꿔왔고, 우리도 가까스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하루키가 옳았어요.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에 비한다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너무 간단한 일이죠. 하루키를 통해 제 삶을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될까요? 손가락 사이로 흩어져가는 이 나날들의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하루키를 좀 더 읽어봐야겠어요!
** 반복과 차이는 홍상수 감독의 새영화 프롤로그에서 나온 말이기도 합니다.
** 위의 책사진은 새로 단장한 표지군요! 제가 읽은 건 옛날 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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