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지음/창비/290면/2008
이런 말 했다가 이른바 '~빠' 돌림 팬들에게 욕을 먹을지 모르겠지만 김연수를 알던 시절에 나는 그가 좀 뾰족한 윤도현, 좀 작은 강동원, 좀 둥근 서태지처럼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말이냐며 여기저기서, 물론 거기엔 김연수의 팬들 것까지 포함한 돌멩이도 날아오는군요.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책 표지 안쪽을 다시 한번 넘겨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얼만큼 닮았는지 안 닮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거야 말로 그저 인상, 일뿐인 걸요. 이 정도라면 그게 무엇 때문이든 상관없이, 정말 좋은 인상 아닙니까? ^^ 매번 새로운 책이 나올 때마다 다음 작품이 더 기대된다고 말하는 건 지금 내가 쥐고 있는 그 작품이 불만족스럽다는 뜻이 아닐 겁니다.
'여행할 권리'는 여행한 이야기라기보다, 여행한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러시아 우스리스끄만에 가면서 만난 이춘대씨와 일본의 아버지 고향, 일본하고도 나고야하고도 타지미하고도 카사하라에 가는 동안 만났던 히라노상과 도야마상, 독일 밤베르크에서 만난 루마니아인 쎄자르,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푸르미,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 만난 흑인 홈리스, 그리고 애나, 중국의 어느 발음하기 어려운 동네에서 만난 후노인과, 또 한국에서 만난 아스트리드, 일본에서 만난 이상.. 그들은 국경 너머에 있기도 하고 저기, 시대 너머에 존재하기도 하는 사람들입니다. 혹은 세대 너머, 그것들이 이리저리 얽힌 그 너머에 있기도 하지요.
결국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거나, 여행에서 만난 것은 결국 나일 뿐이라는 흔하디 흔한 여행에 대한 생각과 결론은 사람들 이야기 속에서 흔적도 없이 녹아 없어지고 만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들의 이야기 역시 그랬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연필을 들고 있었지만 저는 여기 한 곳에만, 밑줄도 아닌 둥근 선을 그어두었습니다. 몇 개의 행들을 모아 그어두는 그 선 말이에요. 바로 여기요. "아버지의 리얼리티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은 고향. 도시락 두 개를 싸들고 두 번 전철을 갈아타면서 타지미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던 두 형제의 고향. 그런 고향은 이제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 뒤엔 이런 말들이 계속 됐죠. "나는 해가 저무는 길에 서서 그 두 형제의 모습을 상상했다. 자신의 삶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두 형제. 태어난 곳이 여기고, 친구들도 다 여기 있는데,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이냐며 귀국선을 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던 두 형제. 그 두 형제 중 한 사람은 북으로 갔고, 또 한 사람은 남에 남았다. 그들에게 리얼리티란 과연 무엇일까? 민족이나 국가나, 그 어떤 거승로 설명한다고 해도 그들의 어긋난 삶이 다시 맞춰질 수 있을까? 토끼를 잡았던 저 산, 붕어를 낚시하던 저 강. 지금도 꿈은 돌고 잊을 수 없는 고향." 이 구절을 읽다가 문득 머릿속에 느낌표가 하나 척 나타났습니다.
결국 여행은 리얼리티를 찾아 떠나는 것. 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죠. 무슨 말이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한 여행과 하고자 하는 여행을 생각해보면, 그건 환상 같은 것이니까요. 왜,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시간이 좀 지난 후에 그것을 떠올리면 언제나 안개나 아지랑이 같은 것에 뒤덮혀 있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 한쪽이 아릿아릿하면서 아련해지고요. 그러면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너무 시시하고 비루한 것이 되고 맙니다. 부인하고 싶은 현실에 대한 자각, 찾아 떠나야 할 진짜 현실에 대한 몽상이 여행을 부추긴다는 것이지요. 바로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 "망각, 망실, 혹은 망명을 향한 무의식적인 매혹"으로서 말이지요.
개성이 넘치는 인물과 테니스를 치듯 주거니 받거니 하는 농담 따먹기를 낄낄거리며 읽거나 그것이 어떤 경계든, 경계 부근을 배회하고 있는 작가로서의 고뇌, 경계 바깥에서 배척과 자청한 고독에 괴로워하는 저 먼 시대 속 문인들의 초상을 다 읽고, 문제는 경계야, 라고 되뇌면서 책을 내려놓고 나면 마음은 저물녘처럼 혼곤해집니다. 하지만 이 책의 효과는 책을 읽고 난 후, 그 구체적인 내용들은 다 날아가버린 다음에 나타납니다. 마주치면 그저 공손히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던 버클리의 그 홈리스가 자신을 향해 반갑게 인사하던 그 순간이, 중국의 위장 결혼 브로커와 나누던 술자리가 고요히 떠오릅니다.
인간이라서 다행이야, 우리 눈에 보이는 경계란 다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저기 저렇게 스러져가는 덧없는 것들, 누구에게나 찾아드는 죽음, 누구에게나 있는 그 마음이라는 것 때문에 세상은 얼마나 '리얼리스틱'한가, 그래지거든요. 그래요, 삶은 영원한 것이지요. 우리가 다만 그것을 스쳐갈 뿐. 그리고 그렇게 덧없이 스쳐가는 것만이 영원히 아름답다는 것에 대뜸 동의하게 돼요. 인간에게 허락된 것이 질문하고, 대답을 찾아 여행하는 것이 전부라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하고 말이죠. 그런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김연수라면 어찌 다음 작품이 기대되지 않겠어요? 그가 외모의 경계를 허물고 누구를 닮았든, 어떤 걸 쓰려고 생각하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