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려령 지음/창비/211면/2008
내가 대학 다닐 때까지 아빠는 우리 엄마를 때렸어요, 바람도 부지기수로 피웠죠, 자식들을 위해 끝까지 참던 엄마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어쩔 수 없이 50이 넘어 엄마는 이혼을 했지요. 내겐 아빠를 기억할 어떤 다정한 추억 한 조각도 없어요. 떠벌일 일도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걸 마음속에 담아두고 엄청나게 불행한 척하는 게 기만인 것 같아 그런 얘기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것치고 삐뚤어지지 않았네요..라고. 그 말 속에서 그런 가정에서 자랐으니 틀림없이 문제가 있을 테지 하는 편견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런 생각은 제 행동을 제한하고 전 언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할지 감시하는 입장이 되곤 했습니다.
도완득. 이름에서 느껴지듯 이 아이는 "완전히 도가 튼 아이"입니다. 엄마는 베트남 사람인데, 자신이 어렸을 때 자기 곁을 떠났고, 아버지는 난장이 댄서입니다. 얼굴이 잘 생기고 몸이 좋은 데다 춤까지 잘 추는 삼촌은 입만 열면 말을 더듬습니다. 이름이 남민구지만, 사람들은 늘 '난닝구'로 알아듣죠. 알고 보면 실제로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인데, 민구 삼촌은 완득이 아버지를 어른으로 대하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 옆자리가 제자리인 줄 알고 일하러 다니던 캬바레에서 쫓겨나자 두말없이 완득이 아빠를 따라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고 5일장을 돌아다닙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담임 선생님 좀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도 옆집 사는 담임 선생님의 관심이 싫지 않습니다.
난장이 아버지는 혹시 자신의 존재가 멀쩡한 아들에게 걸림돌이 될까 봐 일찌감치 독립시켰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아들을 찾는 베트남 엄마에게 완득이가 사는 곳을 가르쳐주고 열일곱 살에 완득이는 엄마를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난 엄마의 분홍색 리본 달린 유치한 신발이 못내 마음에 걸려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예쁜 신발을 사주는 완득이. 여자친구, 킥복싱. 완득이에게는 그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 있을 법한 일과 갈등이 생기지요. 그 갈등은 세상을 뒤집을 만큼 큰 일이 아니지만 누군가의 인생에서 신중하게 다뤄져야 할 일들입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게 조금 쪽팔리긴 하지만 그렇게 큰 일이 아니고, 킥복싱은 매번 지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 진 만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요. 어떤 외부의 조건이 그 사람의 전부일 수는 없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곤 해요. 행복한 가정이, 든든한 양친이, 경제적 여유가, 남에게 빠지지 않는 외모가, 우수한 학교성적이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곤 해요. 완득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흘려보낸 내 하루들, 대단한 거 하나 없는 내 인생, 그렇게 대충 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거창하고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 작은 하루가 모여 큰 하루가 된다. 평범하지만 단단하고 꽉찬 하루하루를 위해 훗날 근사한 인생 목걸이를 완성할 수 있다"고. 모든 아이들이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지만 오늘 하루는 모두 같아요. 그리고 그것을 채울 하루치의 '희망'도요. 산다는 건, 거창한 다짐없이 그저 그런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지요.
처음으로 돌아가 볼께요. 아무리 편견이 없다 해도, 아무리 선입견이 없다 해도 세상에 완전한 인간이 없다는 건 누구나 알아요. 조금쯤은 상처와 흠집이 남아있겠죠. 하지만 그걸 부인하지 않고, 그래서 그게 열패감이 되지 않고, 그냥 나 자신의 일부가 되기는 쉽지 않아요. 완득이라면, 촌스러울 정도로 우직하고 반듯한 아이라면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그 거친 세상에 굴하지 않고 매일의 희망으로 자신의 삶을 부풀려나가기를 바래요. 너무 쉽다고요? 치열하지 않다고요? 어쩌면 그런 단순함이 진짜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꺾이지 말고, 겁먹지 말고 세상의 모든 완득이가 단순한 우직함으로 살아갔으면 해요. 힘들 수도 있겠지만 말예요. 그런 의미에서 세상 모든 완득이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