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어찌할 수 없는 소문

양화 2008. 11. 24. 17:10

어찌할 수 없는 소문

 

_ 심보선

 

  나는 나에 대한 소문이다 죽음이 삶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불길한 낱말이다 나는 전전긍긍 살아간다

나의 태도는 칠흑같이 어둡다

 

  오지 않을 것 같은데 매번 오고야 마는 것이 미래

다 미래는 원숭이처럼 아무 데서나 불쑥 나타나 악수

를 권한다 불쾌하기 그지없다 다만 피하고 싶다

 

  오래전 나의 마음을 비켜간 것들 어디 한데 모여

동그랗고 환한 국가를 이루었을 것만 같다 거기서는

산책과 햇볕과 노래와 달빛이 좋은 금실로 맺어져 있

을 것이다 모두들 기린에게서 선사받은 우아한 그림

자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쉽고 투명한 말로만 대화할

것이다 엄살이 유일한 비극적 상황일 것이다

 

  살짝만 눌러도 뻥튀기처럼 파삭 부서질 생의 연약

한 하늘 아래 내가 낳아 먹여주고 키워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정말 아무 것도 없다 이 불쌍한 사물들은

어찌하다 이름을 얻게 됐는가

 

  그렇다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 살아 있음을,

내 귀 언저리를 맴돌며, 웅웅거리며, 끊이지 않는 이

소문을, 도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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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만 눌러도 파삭 부서질 것처럼 연약한 생을 사는 시인처럼, 

살아 있음이라는 어찌할 수 없는 소문에 전전긍긍 살아가고 있는 요즘입니다.

라흐마니노프도 꽤 위로가 되고 있고요..

뜸한 요즘에 대한 변명이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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