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진짜 소설

양화 2008. 7. 11. 10:10

소설을 구성해나가는 데서 자극적인 주제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무엇인가 특별한 것에 대한’ 소설은 늘 실패로 끝난다. … 성공한 소설은 인물들로부터 시작하고 그들과 함께 지적,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인물들은 그들이 처해진 상황, 그들의 시대적 주제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 위대한 소설은 작가가 외롭게 인간의 경험을 탐구하는 데서 얻어진 것이지 학술적 조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플로베르, 도스토예프스키, 제인 오스틴, 투르게네프, 그리고 헨리 제임스가 이 사실을 증명한다. 


작가는 왜 쓰는가, 제임스 미치너 지음

 

전에도 책 읽는 데 늙은이 취향이 시작되었다고 썼는데,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인상적인 단 한 구절만이 머릿속에 남는 책이 싫다. '열광'이 없는 책. 상징이나 은유가 너무 과하지 않은 책이 좋다. 다 읽고 나서야, 묵직하게 가슴에 얹히는 책이 좋다. 제임스 미치너의 '작가는 왜 쓰는가'를 소개하는 띠지는 '명쾌한 글쓰기 지침서'라고 되어 있지만 이 말은 믿지 않는 게 좋겠다.

 

이 책은 제임스 미치너의 작가로서, 편집자로서의 삶을 요약하고 있기는 하지만 인상적인 한 구절보다 그가 작가로서 혹은 편집자로서 문학을 대해온 자신의 삶을 전하고 있다. 그건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만 아는 것으로,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없다. 그것은 그가 헤밍웨이의 원고를 읽고 감동해서 그저 밤길을 거닐 수밖에 없는 것과 비슷한 거다. 소설가 김연수가 요전에 이런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어린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소설은 어른들의 여흥거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좋은 소설이란 카버의 문장처럼 쓰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릴 때,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직접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걸 문장으로도 직접 쓸 수 있다고 느낀다. 어린 사람들에게 감정은 그처럼 또렷하고 단순하다. 따라서 문장 역시 직설적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느낀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일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게 고통이든, 사랑이든, 행복이든, 그걸 글로 쓰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오랫동안 글을 쓴 소설가들은 결국 점점 감정표현이 메말라진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마지막 문장 같은 문학의 언어를 어떻게 번역하는가가 자신이 타인을 이해한 정도라고 한 말에 동의한다. 이제는 새로운 이야기, 예쁘장한 감성을 담은 은유나 상징보다 그런 것에 끌린다. 그런 점에서 제임스 미치너의 책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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