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머리말

양화 2008. 1. 20. 17:41

독특한 개인이란 균열없는 하나의 세계관을 가지고 모든 주제에 대해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개인성을 포기했다는 가장 확실한 표시는 그가 모든 문제에 일관되고 명료한 해답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개인성은 자신의 믿음에 끊임없이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과정, 때로는 우호적인 지적 토론이지만 때로는 목소리를 높이는 감정적 싸움이 되기도 하는 논쟁에서 형성된다.      p. 7

 

인생의 일곱 계단, 에드워드 멘델슨 지음

 

한 인간의 전기를 쓰면서 공정성과 객관성을 표방하기는 쉽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역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은 추구해야 할 이상이지 눈앞의 현실은 아니다. 더구나 하나의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서로 다른 증언이 속출할 때 어떤 것을 선택하고 배제하는가 하는 것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선택이나 배제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을 감추거나 생략하는 것이다.    p. 9

 

인간 이순신 평전, 박천홍 지음

 

머리말만으로 확 잡아끄는 책들이 있다. 최근 보편적인 인간성과 상식에 기반한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탓인지 이런 머리말에 마음이 기울었다. '인간 이순신 평전'은 실은 오래오래 전에 읽은 것인데, '인생의 일곱 계단' 머리말을 읽는 순간 퍼뜩하고 떠올랐다. 문제는 선택이나 배제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을 감추거나 생략하는 것이라는 사실. 그러니까 마음속에 상반되는 두 가지 목소리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내 나약함의 근거로 생각해 감추려 하거나 생략하지 말고 지적 유연함(!!)으로 생각하자. 에드워드 멘델슨의 말처럼 "원형이 개인보다 더 실제적이며 신화는 관찰보다 더 진실하고, 거대한 질서에 대해 갖는 비전이 개인들 삶의 세세한 측면들을 한데 어우르려는 시도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지적 편견일 뿐인 거다.

 

궁금해할까 싶어 '인생의 일곱 계단'이라는 책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개인적 삶에서의 중요한 경험들을 깊이 있게 다룬 소설 7편을 골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생 행로 - 탄생, 어린 시절, 성장, 결혼, 사랑, 부모, 미래 - 에 빗대 쓴 문학평론집이다. 선정된 소설은 매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막간' 등 일곱 편이다.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 이 책의 주요 논점은 개인적 삶의 가치다. 7편 모두가 하필 19세기와 20세기의 주요 여성작가인 이유도 독립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던 당시 여성작가들의 처지 때문에 그들이 작품을 통해 더더욱 개인적 삶의 가치를 지키는데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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