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재미있게 잘 놀기

양화 2007. 9. 17. 01:13

나는 '호모 루덴스'이고 싶다. 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놀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다. 놀면서 이 세상에 있다는 거,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놀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노는 데는 어떤 의무나 조건도 붙어있지 않다는 점에서 자유롭다. 자유는 신의 특징이다. 신은 누구의 창조물도 아니고 다른 누구를 위해 일하지 않으며, 세계는 제우스의 장난이라는 니체의 말대로, 세상을 창조해야 하기 때문에 창조한 것도 아니다. 신은 스스로 연유하며 스스로 완결된다. 노동이 신성한 게 아니라, 놀이가 더 신의 속성을 닮았다. 놀이는 일상적이고 지루하고 관습적이고 당위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즉흥적이고 자발적이며 사소하며 창의적인 세계로 가는 몸짓이다. 천진난만한 아이가 되는 것이다. 백수들이 추구하는 세계다.

 

노는 게 당위론적으로도 좋은 이유는, 놀면서 뜻하지 않게 자신을 알아가고 얻어가며 넓혀나가기 때문이다. '호모 파베르'이던 나는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 뒤, '호모 루덴스'로서의 나를, 그리고 장거리 여행의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는 내 몸을 발견한다. 그래서 미국 단독 횡단이라는, 그 전에는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판의 유희에 하루하루 희희낙락하면서 그 꿈을 한발 한발 이뤄가고 있는 중이다. 로키 산맥이 나를 부른 것은 바로 크게 한 판 놀아보자는 유혹이었던 것이다.

 

나는 실존주의자들처럼,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날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는다. 오늘이 최상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점점 더 좋은 날로 가는 도중의 하루라는 뜻이다. 오늘이 남은 생애의 첫날이라는 말도 맞다. 하지만 그것은 왠지 과거를 지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미래에 대해 갖는 부질없는 희망처럼 들린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그것들은 더 나은 날들을 위해 바닥에 깔리고 모여지는 것이다. 나는 바퀴를 굴리면서 내 몸의 가능성이 쉬지 않고 이뤄지고 펼쳐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후지어 패스를 넘었어도 여전히 성취해야 할 험한 산들이 기다리고 있다. 세상은 더는 관조하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교문을 열고 뛰어들어가는 운동장이 된다. 나와 세상의 관계는 자전거를 타고 들어가면서 역동적으로 바뀐다.

 

체력이 향상된다는 것과는 다른 뜻이다. 내 몸은 의지가 육화된 표현기관이다. 반대로 내 의지는 몸이 조성하는 정신적인 힘이다. 의지와 몸은 정반합의 변증법적인 관계를 이루며 하루하루 더 나를 강건하게 한다. 하루는 의지가, 하루는 몸이 나를 이끌고 간다. 나는 물질과 정신, 가능성과 불가능성, 무한과 유한, 순간과 영원, 자유와 당위, 절대와 상대, 진짜와 가짜, 확실성과 불확실성,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끊임없는 충돌이자 화해의 정점이다. 노동이 충돌이라면 페달밟기는 화해다. 달리면서 세계와 나의 거리가 줄어든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게 아니라 세상 안에 펼쳐지고 있다.    p. 289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홍은택 지음

 

여행은, 걸어가든 자전거 바퀴를 굴려가든 사람들을 비슷한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 여행은 궁극적으로 더 넓은 세상,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더 많이 넓게 만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자전거 바퀴와 닮았다. 둥근 모양새는 세상의 접촉면이 가장 적은 효율적인 모양새다. 굴리면 반복적으로 세상을 딛게 되는 셈이지만 나아갈 때마다, 디딜 때마다 그 세계는 새로운 세계다. 그 낯선 세계,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나에 대해 생각하고 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또, 들고 가는 짐을 줄일수록, 그 짐들을 대변하는 욕구들을 감량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데 그렇게 많은 게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혼자 여행하면서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 세상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선의를 믿게 된다. 이건 가까운 사람들과 준 만큼, 받은 만큼 나누는 애정이나 보살핌과는 다르다. 그야말로 무작위 세상이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선인 거다. 때로는 육체적으로 극한 상황을 넘기면서 나라는 사람의 안과 밖이 확장되는 경험을 갖게 된다.

 

이 책의 저자가 아주 적절하게 표현한 것처럼 "여행은 매일 이름 모를 항구에 도착하는 것이다. 자전거를 세우고 낯선 거리를 걸으면 오랜 항해 끝에 부두에 내린 선원이 된 듯하다. 선원은 정복자가 아니라 마을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찬 이방인"(p. 250)인 거다. 그래서 결국 비슷한 결론에 이른다. "나는 그동안 항상 뭘 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다. 목표를 이루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은 잠시고, 곧바로 더 어려운 목표를 설정해 스스로 채찍질했다. 그래서 현재는 미래로 가는 하나의 디딤돌에 지나지 않았다. 그 무수한 디딤돌을 밟고 미래는 항상 저 멀리 달아난다.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가시지 않는다. 현재가 내 삶에서 소외돼 있는 것이다. 직선적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내게는 두 점, 다시 말해 과거와 미래밖에 없었다. 그 두 점을 잇는 선분인 현재는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지 못했다.(p. 145)"는 걸 깨닫게 되는 거다. 3개월 내내 하루 60km에서 많게는 100km를 노동하듯 자전거로 달려 미국을 횡단한 저자도 꼭 그랬다. 

 

형식상 여행은 아니었지만 잠깐 미국에서 살았을 때, 나도 비슷한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그것도 내겐 여행이었던 거다. 다른 곳을 여행한 여행서지만 모든 여행서가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비슷하다. 걷거나 자전거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좀더 직접적으로 단단하게 디디는 여행은 훨씬 그 깨달음이 진하다. 도보여행 책이나 산악도서처럼, 이 자전거 여행책을 읽으면서 엉덩이가 들썩였다. 페달을 밟거나 내 발을 땅바닥에 디뎌 거기서 전해지는 진짜 감정이, 진짜 인생이 내 핏줄과 내 근육을 타고 심장까지, 머리까지 가닿기를 바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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