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항 어디쯤일까? 다른 동네는 실제로는 되게 후져도 영화 속에서는 멋지게 나오곤 하는데, 인천은 늘 왜 영화 속 풍경이 더 후져보이는 걸까? *
난 이런 영화가 좋다. 믿고 싶은 세상을 보여주는 영화. 그래서 보고 난 다음 웬지 세상이 핑크빛으로 보이고, 세상에 어떤 사람도, 어떤 일도 그냥 있는 법은 없는 거라고 낙천적으로, 긍정적으로 믿게 만드는 영화 말이다. 건조하고 날카롭게 세상을 보여주는 영화를 보고 나면, 어쩜 저렇게 딱 집어서 정확하게 보여주나 감탄하면서도 마음은 며칠동안 지옥을 산다. 오동구, 이름조차 오동통한 이 고등학교 1학년 아이는, 엄마는 가출하고 아빠는 술주정뱅이에 툭하면 식구들을 패고, 갈수록 그런 아빠를 닮아가는 남동생이 있는 가난한 집의 큰 아들이다. 그 아이에게는 누구에게나 툭 터놓을 수 없는 말 못할 꿈이 하나 있다. 바로 진짜 여자가 되는 것. 비리비리 약한 아이들에게조차 놀림감이 되는, 그야말로 먹이사슬의 제일 아래쪽에 살고 있는 그런 친구다. 그런 동구가 모자란 수술비 5백만원을 얻기 위해 씨름을 시작한다. 키도 작고, 해본 적도 없는데, 이 아이에게 뜻밖에 씨름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과연 동구가 씨름대회에서 천하장사가 되어 그토록 오매불망하는 마돈나가 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정말 좋았던 건, 이렇게 그림 딱 나오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다 꽃 같다는 거다. 모두들 누구한테 배웠는지. 가끔 엉뚱한 말을 해서 그렇지 - 열심히 씨름해서 강호동 같은 훌륭한 개그맨이 되겠다는 말에 뒤집어졌다! - 동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친구, 앞으로가 더 힘들 거라고, 자신 있냐고, 그렇다면 네 뜻을 존중하겠다고 물기 어린 눈으로 얘기해주는 어린 엄마, 몸은 무거우나 삶만큼은 무겁지 않은 덩치 3인방. 그들은 모두 세상의 잣대에 비추어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거나 미워하거나 움츠러들지 않는다. 그저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뭐가 되고 싶은지 몰라 하루에 열두 번씩 꿈이 바뀌는 아이조차도 초라하지 않다. 물론 그 최고봉은 동구. 그 아이가 "난 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살고 싶은 거"라고 이야기할 때, 가슴이 뻐근하도록 통쾌했다. 되고 싶은 것과 살아가는 것을 맨날 헛갈리는 이 철 안든 어른에게 호통치는 것 같았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삶도 삶이라는 걸 우리는 종종 잊는다. 그래서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내팽개치곤 한다.
거대한 포크레인으로 상징화된 공포의 대상이자 넘어서야만 할 상대인 아버지가 교복을 입은 남자아이인 동구 뒤로 엄습해오던 장면과 밝은 대낮에 치마를 입고 머리핀을 꽂고 립스틱을 바른 여자아이 동구가 정면으로 맞대결하는 장면의 명쾌한 댓구라든가, 빨간색과 파란색 샅바를 함께 빨아 보라색 샅바가 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장면이라든가는 의도가 너무 보이는 뻔한 장면이라고 하기에는 아귀가 잘 맞고, 얻어 터지던 여자아이 동구가 뒤집기 한 판으로 아버지를, 세상의 편견을 넘어서는 장면이나 의욕을 잃고 길거리에 앉아있던 동구를 그의 꿈으로 다시 이끌어간 마돈나 장면에서의 판타지는 속이 시원하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아, 세상엔 저런 판타지가 있어야만 해, 그리고 아아, 누구에게나 저런 빛이 있지, 일곱 번 넘어졌더라도, 아무리 다시 일어설 힘이 없다고 느껴도 우리가 무엇인지, 누구인지 순식간에 알아차리게 만드는 빛. 아무리 혼잡한 곳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빛이 있었지. 내가, 내 손으로 켠 그 빛. 가장 절망적이라고 느끼는 순간, 가장 환하게 타올라 우리를 이끄는 그 빛. 그런 판타지 장면들은 나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리게 만든다.
소설가나 극작가들의 말 중에는 캐릭터가 분명하면 작품을 써나가는 동안 그 캐릭터들이 스스로 살아움직여 그냥 그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증언이 많다.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화면이나 스크린에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 순간에도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그려지고 짐작되는 생명력 있는 캐릭터는 아무리 황당한 이야기라도 그것을 견고하고 사실적으로 만든다. 엄마, 고등학교 때 참 이뻤다, 동구는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그게 참 고맙다, 가드 올리고 상대방 주시하고, 이런 대사 몇 마디로 그 캐릭터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환히 꿰뚫어보게 만드는 건 시나리오의 힘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리고 사랑스런 배우들. 대사 하나 없는 변태 덩치나 동구를 헛갈려하며 춤을 배우고 대신 씨름을 가르치는 덩치, 출연 분량에 상관없이 정말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이상아, 능청스럽지만 따뜻한 스승 역할의 백윤식, 열등감의 화신이지만 늦게 마음을 연 만큼 끝까지 믿어주는 주장 역할의 이언, 모두모두 보석 같다. 물론 그 한가운데는 류덕환이 있다. 박해일을 닮은 민꺼풀의 예쁜 눈, 나직나직 아무리 차가운 사람이라고 몇 마디만 나누면 무장해제 되고 말 것 같은 섬세한 목소리. 정말 최고의 캐스팅이고, 아름다운 연기였다.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 드디어 꿈을 이룬 동구의 무대에서 동구와 아버지를 섣불리 화해시키지 않은 것이 좋았다. 씨름대회장에 나타났다는 것으로 아버지와 동구를 곧장 다정한 사이로 만들었다면, 난 이 영화를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 객석의 얼굴을 하나하나 비춰줄 때, 아버지의 얼굴이 나올까 봐 정말 조마조마했다. - 동구의 무대에 환호를 보내고 웃으며 축복해주는 그들 무리 속에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좋았다. 오랫 숙적을 마지막 순간에 통쾌하게 이기거나 난생 처음 씨름을 하게 된 아이가 마침내 우승을 해서 꿈에 그리던 소원을 성취하고, 그것이 진짜 세상에서 영화처럼 그렇게 달콤하게 이뤄지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안다. 코끼리 발을 가진 정말 못생긴 여자가 되어 살아갈 그 아이의 앞으로의 삶이 얼마나 힘겨울지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영화가 좋다. 저기 길을 걸어가는 저 남루하고 지친 얼굴의 저 사람에게도 내가 그토록 중히 여기는 것과 같은 삶이 있고, 길을 잃지 않도록 이끄는 그들만의 빛이 있다는 걸 일깨우고 믿게 하는 영화.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길을 걷는 사람, 버스안에 사람들의 얼굴을 훈훈해진 마음과 시선으로 다시 보게 만드는 그런 영화가 좋다.
인천에 사는 사람으로서 한 마디. 인천은 서울에 경제적 기반을 둔 위성도시이자 항구도시. 그래선지 아웃사이더들의 배경으로 자주 쓰인다. '고양이를 부탁해'도 그렇고 이 영화도 그렇고, 인천의 황량한 모습만을 어찌 그리 잘 뽑아냈는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게 인천이다. 도시에도 표정이 있는 것일까. 인천항 근처로 가면 있는 어쩐지 군내나는 차이나타운,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온 듯 일제시대를 옮겨놓은 것 같은 인천우체국 근처의 계단식 적산가옥과 일제 시대 석조건물들. 회색 필름이라도 입힌 듯 무채색 느낌의 구질구질한 자유공원. - 비둘기 똥이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 질서없이 들쭉날쭉 엎어져있는 낮은 집들. 미적 고려라고는 없는 간판과 건물이고 길이고 뭔가 구색 안 맞는 거리 풍경. 이 영화에 나온 인천도 딱 그런 모습이었는데, 어쩐지 애잔했다. 자기 몫의 기쁨과 자기 몫의 슬픔, 외로움을 안고 그저 살아가는 동구처럼.
'영화를 보러갔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인의 삶 - 삶과 바꿀 수 있는 것 (0) | 2007.04.09 |
---|---|
타짜 - 대중영화로 사는 법 (0) | 2007.02.18 |
라디오스타 - 취향과 지향 사이 (0) | 2006.12.26 |
카포티 - 누가 그를 죽였나 (0) | 2006.06.22 |
사생결단 - 돌이킬 수 없는 (0) | 2006.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