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신은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타고난 재주가 있었다. 그녀를 알아가게 되면서, 그는 맥신이 자기 이외에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다른 가정에서 다른 방식으로 자라나는 것을 원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생각으로는 이것이 그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 맥신은 고골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놀라는 적이 많았다.... "정말?"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이렇게 물었다. "그렇지만 자긴 너무 다르잖아. 난 상상도 못 했었는데..." 그는 모욕이라고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어떤 선이 그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p. 183
"가끔 가다 그를 생각하면 어떤 패배감과 함께 그녀가 거부했던 종류의 삶, 그토록 잊으려고 애썼던 종류의 삶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니킬은 그녀가 함께 있기를 꿈꾸어왔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그랬던 적도 없었다. 바로 그런 이유들 때문에 그와 함께 했던 처음 몇 달간 그와 사랑에 빠졌던 일이, 즉 평생 동안 부모님이 기대하신 대로 했던 것이 오히려 무슨 금지된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언가 대단한 위반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p. 323
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 지음
지우고 싶으나, 지울 수 없는 것. 고골리는 자신에게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림자, 인도의 전통 따위를 지워내려고 한다. 살고 있는 곳은 미국이므로, 주변 사람들과 발 딛고 선 땅, 그리고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그에게 넌 우리와 다르다, 혹은 넌 뭔가 이상해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분열되지 않는 방법이라곤 어느 쪽을 부인하고 다른 한쪽을 따르는 것밖에 없다. 또래 아이들이 즐기는 음악을 듣고, 또래 아이들을 따라 살지만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우려고 애쓸수록 더 파랗게 솟아오르는 어떤 것들이 있다는 것만을 깨닫게 된다. 네 번의 사랑을 통해서.
그 가운데 저 위에 인용한 두 여성은 너무나 분명히 대비된다. 전형적인 뉴요커 맥신은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고골리와 비슷한 처지의 모슈미는 이전 세대처럼 살지 않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기에 고골리에게 끌리는 것을 일종의 반항처럼 느낀다. 그러니 고골리가 맥신과도, 모슈미와도 끝까지 사랑하지 못하고 마는 것은 당연하다. 맥신에게는 경계에 선 채 끊임없이 다름을,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기를 계속 유보하는 고골리가 이해될 수 없고, 모슈미에게는 그토록 잊으려 애쓰던 삶을 어쩔 수 없이 계속 떠오르게 하는 니킬이 끝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의 갈비뼈로 태어난 고골리. 아버지를 살린 책의 저자 이름을 따 붙여진 이름, 고골리. 그가 후에 니킬이라고 이름을 바꾸었지만 그가 아버지에게 사고 후에 일어난 모든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아는 이상, 아버지와 함께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데까지 함께 갔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한 그에게 자신의 피에 새겨진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 모든 것들은 삶을 견뎌내고 살아남아 결국 끝까지 삶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책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그는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의식한다. 불안하게.
스스로 세련되고 지적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어떤 이에게 추천받아 읽었다. 그이 취향대로 세련되고 지적인 소설이다. 술술 읽히고, 작가는 덤덤한 말투 속에 아주 미세한 것들을 잘 담아내고 심지어 그것으로 파도까지 만드는 재능이 있다.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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