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이렇게 죽고 싶다

양화 2006. 3. 5. 15:56

 

 

"때때로 노튼이 내 옆에 있거나 탐험을 하지 않을 때면 벤치에 뛰어올라 그 독특한 걸음걸이로

햇살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찾아가 몸을 붙이고 졸았다. 책을 읽거나 울지 않을 때면 나는 노튼을

쳐다보았다. 잔디 속에서 노튼은 잘 생겨 보였다. 노튼이 아주 작아져서 내 눈에는 어리고

건강해 보였다. 다시 새끼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보기 좋았다. 노튼은 잔디 속에 있고 나비가

날아다니고 새들이 여기저기서 지저귄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요한 풍경이었다. 그리고

평화로웠다. 노튼은 아프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아니었다. 노튼은 토하지도

않았다. 고통스러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햇살 아래 앉아 있었다.

노튼은 그저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때로 노튼은 야옹하고 울었다.... 내가 올바른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한 소리였다고 생각한다.

......

 

그는 노튼을 130세까지 산 우크라이나 농부에게 비유했다. 죽음의 순간이 오면 그들은 빨리

죽는다. 우리는 죽음을 연장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우리 삶의 3분의 1을 단지 

죽어가는 데 쓴다. 그 농부들은 건강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펑하고 사라진다.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마티는 말했다. 질 좋은 삶을 살면서 가능한 한 오랫동안 건강히 지내고 그런 다음

빨리 죽는 것. 노튼 역시 그렇다고 그는 말했다.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 피터 게더스 지음, p. 255-257

 

세계에서 아마도 가장 유명한, 아니 유명했을 고양이 노튼의 마지막 이야기를 읽었다.

고된 일이 끝나고 뭔가 잔잔하면서도 힘겹게 읽지 않아도 될 책을 고르다 걸린 책이었다.

앞부분 3분의 1 정도를 읽을 때는 내가 이걸 왜 읽어야 하지, 하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어느 레스토랑에서 뭘 먹었고, 자신의 멋진 고양이가 어떻게 잘 대접 받았는지,

어떤 유명 인사들을 만났고, 만날 당시의 에피소드.. 이런 걸 읽고 있자니,

유머러스한 뉴요커식 말투와 우리도 알 만한 유명인사와 얽히는 이야기들이

재미있기는 했지만 약간 속이 꼬이면서 이깟 고양이의 심심파적 일상에

종이와 잉크 낭비가 웬말이냐... 세계에 중차대한 이슈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마음이었던 것이다.

 

처음 책을 집어들 때는 전작 '파리에 간 고양이'나 '프로방스에 간 낭만 고양이'가

여행이나 다니는 팔자 좋은 고양이 이야기일 거라는 괜히 거부감이 들었던 것과 다를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자신의 고양이가 죽기까지 그 과정에서 나누는 교감을 통해 인생에 대한 성찰,

이런 게 나오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있었던 듯 하다. 고양이가 비춰보여주는 인간세계에

대한 여러 관점, 뭐 이런 것도 기대했다.

 

하지만 끝이 다가올수록 난 오히려 피터 게더스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너무 고맙고

다행스러웠다. 그가 자기 고양이 노튼과 나누는 교감이란, 그저 고양이와 인간의 교감일

뿐이었다. 고양이를 의인화해 자기의 생각을 투사하거나 고양이의 몸짓에 인간이 하는

행동의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은 것이 정말 좋았다. 게더스와 노튼이 그토록

완벽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게더스 말마따나 고양이가 너무나 단순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거기에 어떤 분식을 했다면, 그건 둘 사이의 관계를 모독하는 일이 될 터이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교감을 맺는 건, 그 대상이 고양이든 아니든 상관없으리라.

오래 쓰던 물건, 애착을 느낀 다른 무엇이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그게 아무리 다른 사람 눈에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비난받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거기에도 원칙이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나는 늘 내가

개인주의자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인용한 문장은 대수로운 문장이 아니다. 고양이의 병세를 확인하고 피터는 화학요법을

쓸 것인지, 대체요법을 쓸 것인지, 그래도 고양이가 죽을 거라는 사실이 변함없다면,

그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를 고민하다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고양이와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던 그곳으로. 그리고 고양이가 지내는 평화롭고 고요한 일상을 그냥 쓴다.

그러면서 고양이의 대체요법 의사 마티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나는 이 장면이 이 책 가운데

가장 슬프면서도 행복하게 느껴졌다. 정원에 만들어둔 고양이의 묘석을 볼 때마다 늘 울었고,

늘 웃었다던 게더스처럼. 그러면서 나도 죽을 때 저랬으면 그런 생각을 했다.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제발 내 몸에 어떤 짓도 하지 말고, 좋아했던 일을 하면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다 펑하고 사라져버리기를 소망한다.

 

* 위의 사진은 노튼과 같은 귀 접힌 스코티쉬 폴더종의 고양이다. 귀엽다.

중간에 이 대목을 읽고 매우 공감하며 역시 박장대소하였다는 후기를 덧붙인다.

 

"솔직히 말해 내 서재에서 가장 햇살이 가장 잘 드는 곳은 키보드의 D자와 K자 키 사이의

공간이며 노튼은 그 따뜻한 햇볕을 온몸에 쬐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노튼을 쓰다듬으며

어쩌면 이렇게 좋은 자리를 차지했냐고 칭찬했다. 노튼은 햇살에 온몸을 담글 수 있고, 나는

원고를 쓸 수 없는 것에 대해 완벽한 변명거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전화벨이 한번 울리자마자

달려갔다(작가들은 누구나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척할 때 전화가 오면 순식간에 받는다)" p. 133 

 

모든 일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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