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이런 책이다

양화 2011. 11. 30. 22:41

누구보다 감사하고픈 사람은 눈 밝은 자연의 관찰자들이다.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끊임없이 묻고, 직접 찾아 나서고, 탐사하고 실험하고, 생각하고 분석하고, 경험에서 얻은 증거로부터 객관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그들이야말로 내가 정말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연의 광채를 만들어냈고, 나는 염치도 없이 그 중 일부를 빌려다 이 책에 옮겨 썼다.

자연의 광채를 '만들어냈다'니, 아마 고개를 갸우뚱할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자연은 존재할 뿐 그 경이로움은 받아들이는 이의 마음속에 깃들인다. 창공을 가르는 갈가마귀의 날갯짓으로 발생하는 압력파나 윤이 자르르한 검은 깃털에 반사되는 광선은 모두 물리적인 현상이고, 따라서 측량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파장이나 광선은 에너지의 뉴런 속에서 활동전위(action potential)로 바뀌고, 다시 뇌에서 감각으로 변환되기 전까지는 소리도, 색도 아니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는 금관상모솔새나 두거운 얼음이 덮인 연못 아래에서 6개월을 사는 늑대거북을 볼 때 느끼는 감탄 역시 이런 것을 지각하고 받아들이는 외에 의해(또는 뇌로 전해져) 드러나야만 비로소 존재한다.

언젠가 생물학의 각종 발견이 '인간과 자연 사이에 장벽을 쌓았다'고 주장하는 글을 읽었다. 그 글을 쓴 사람도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과학이 객관성이라는 '거리'를 내포한다고 느낀 모양이다.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혼란으로부터 경이로움이라는 알맹이를 건져내고, 상상에 불과한 것으로부터 사실을 걸러내는 여과기의 역할을 할 뿐이다. 거리를 두기는커녕 정반대다. 생물학은 뭔가를 자세히 알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서 나온다. 그리고 실질적인 대상의 윤곽을 모른다면 그것과 가까워지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또 어딘가에선 소로가 자연주의자가 되면서 '사색가임을 중단'했다는 글도 읽었다. 개인적인 생각을 밝히자면, 그것은 거꾸로 된 태도이다. 생각을 하려면 사실이 필요하고, 사실의 뒷받침 없는 생각이란 느낌에 불과하다. 소설은 그것을 아무리 사실처럼 꾸민다 해도 여전히 소설일 뿐이다.  p. 13-14 

                                                                                                             -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동물들의 겨울나기

 

저자 이름만 보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다가 여기 적은 이 '감사의 글' 딱 한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었다. 이건 도서관에서 빌려서 볼 책이 아니야, 싶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점을 뒤졌지만 품절이었다. 품절은 절판의 전 단계다. 탄식이 나왔다.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다 알라딘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한 권을 발견했다. 그리고 번역된 그의 모든 책을 주문했다. 품절된 데다 중고서점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까마귀의 마음'만 빠졌다.

 

 

출간일도 확인 안하고 주문한 '아버지의 오래된 숲'은 지난 주 토요일 북센션에 소개된 최신간이었다. 기자의 호평이 흐뭇해서 내 자식이 칭찬 받은 것처럼 뿌듯했다. 이런 책이다. 이런 책이 좋다. 이런 책을 읽고 싶다. 신실한 삶과 순수한 열정과 깊은 애정, 고도의 지적 연마와 편안하고 군더더기 없지만(혹은 없어서) 아름답기 짝이 없는 글. 후루룩 얼른얼른 읽어본 몇 문장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따뜻해진다. 힘을 주어 그어버리면 망치기라도 할까 봐 연필로 살살, 작가가 직접 그린 세밀화들도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내 말은 모두 군더더기, 이 책들이 품절되지 않도록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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