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서너 살 먹은 아이와 글 쓰면서 그림 그리는 아내를 데리고, 장서 2-3천 권과 첫 저서 초고를 들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영국으로 향한다. 영국인이 되기로 한 것이다. 그가 가려고 하는 곳은 헌책마을 헤이온와이. 영국인이었던 부모님이 이민하면서 버렸던 영국적인 모든 것을 되찾으러 간다. 그래서 그에겐 미국의 것과 다른 모든 영국의 것에 대한 깊은 애정이 깔려 있다. 형편없는 사과주를 끝내주는 사과주로 내놓으면서 다 먹었나 안 먹었나를 감시하는 동네 술집 주인 할머니조차 사랑스럽다. 그가 그리는 영국스러움은 이 두 문장에 요약된다.
"집으로 가면서 주위의 건물을 경탄의 눈길로 바라본다. 담쟁이에 뒤덮인 킬버츠 식당, 오래된 침례교회의 기울어진 석조와 돌이끼, 펨버턴 서점의 탄탄한 돌벽, 오스카 식당의 오래된 회벽. 이제 이 집이 전부 우리 이웃이 된다. (251)
무뚝뚝한 이웃과 비싼 기름값, 졸졸졸 겨우 흘러나오는 샤워기의 물, 집을 사려는 사람에게는 깍쟁이 같기 이를 데 없는 부동산업자까지 부러움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들려주던 저자는 영국에 정착할 집을 찾아 헤맨다. 그의 차지가 되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기울어져가는, 곰팡이 끼고 어디선가 물이 새는 낡은 집, '식스펜스하우스'다. 그는 식스펜스하우스에서 단 하루도 살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책이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새로운 곳으로의 이주와 정착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 막 작가가 되려는 찰나의 불안과 긴장인 듯하다.
"나는 부스 서점으로 터덜터덜 걸어가 끝없이 뻗은 먼지투성이 복도를 둘러본다. 이 죽은 듯한 서가들을 보라. 이름을 알아볼 수 있는 책이 한 권 있으면 처음 들어 보는 책이 스무 권은 있다. 평소에는 그런 생각을 하면 기운이 솟는다. 모르는 책이 스무 권이나 있다니! 그런데 지금은 어쩐지 울적한 기분이 든다. 별 볼일 없는 책, 아무리 따분하고 답답한 책이라고 할지라도 쓰고 출간하는 데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되려고? 결국 늙은 아나키스트 손에서 뒷마당에서 재라 되라고?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면서 자신이 만든 나라의 왕이 된 리처드 부스는 정기적으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책들을 불태우곤 한다, 이건 내 주석) 막 책을 줄간하려는 작가가 이런 곳에서 일한다는 것은, 임신한 여성이 영안실에서 일하는 것하고 비슷한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날마다 망각을 맞닥뜨린다. 대부분 책이나 작가는 비평의 포물선을 따라 지나간다. 대개 첫 번째 책은 '장래가 촉망'되었다가 두 번째 책은 '실망스럽기' 마련이다. 세 번째 이후는 '괜찮은' 책이고." (164-165)
그래서 그는 책 전체에서 아무도 지금까지 호명해주지 않는, 과거의 책들을 불러온다. 적절한 자리에 적절하게 인용된 무명작가, 혹은 잊혀진 작가들의 토막글을 읽는 재미도 제법 괜찮다. 물건으로서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저절로 파악하게 되는 책에 대한 재치있는 통찰도 유쾌하다. 표지의 모양, 크기, 스타일 등으로 책의 종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둔 150-151쪽의 내용은 우리 상황에는 꼭 들어맞지 않지만 우리 책들을 떠올리며 웃음을 띠고 읽을 수 있다. 또 헌책방의 생존전략을 한 마디로 설명한 이런 대목은 통쾌하다.
"하지만 내 생각에 부스 서점의 위대한 점은 이곳이 천년이 지나도 팔리지 않을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듣도 보도 못한 책과 아주 익숙한 책의 비율을 신중하게 맞춰야 한다. 전자가 너무 많으면 망하고 후자가 너무 많으면 재미가 없다. 기이하고 '가치 없는' 책들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그림 뒤쪽에서 선이 소실점으로 수렴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 가운데에서 알아볼 수 있는 책이 소실점 속으로 묻힐 때에 전체 책들에 깊이가 생기는 법이다. 뿐만 아니라 사실 사람들이 원하는 게 무언지는 절대 미리 알 수가 없다. 저마다 가치 기준이 다르니 말이다."(158)
영국적인 것에 대한 동경과 애정은 무뚝뚝한 영국의 일상까지 흥미진진하게 바꾼다. 가령 이런 것.
"영국인들은 아주 과감하게 광고를 한다. 북쪽 지방에 있는 교회 공동묘지에는 이런 묘비명이 적혀 있다.
존 로버츠를 기리며
석수 겸 묘비 조각가
1800년 10월 8일 토요일 사망
영업은 프레시필드 플레이스 1번지에서 미망인이 계속합니다."
(276, 폴 콜린스 지음, 식스펜스 하우스)
그의 영국 정착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첫 번째 교정이 끝난, 편집자의 질문과 수정안 포스트잇과 그에 대한 자신의 답과 동의, 부동의 표시를 덕지덕지 붙인 원고더미를 끌어안고 미국으로 돌아온다. 실패로는 보이지 않는다.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헌책방이나 하며 살아가는 삶을 꿈꾸거나 축제철의 소란스러운 관광지로서의 헤이온와이만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드러난 요란스러움 뒤에 길고 어둡고 조용한 이 마을의 시간을 발견하고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헤이온와이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서점을 하며 살고 있지만 그들의 수명은 아주 짧다. 수익을 내면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사람은 헤이의 왕 리처드 부스뿐이다. 이곳에서의 삶에서 성공하는 길은 어떤 세속적인 의미의 성공도 꿈꾸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 것 같다. 어디에선들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그의 정착 실패가 실패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상적 삶의 불가능성에서 오히려 삶의 가능성을 찾은 것 같으니까.
이어령 선생님 원고 작업을 끝내고 며칠, 마음 고생을 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책을 읽고 생각을 익힐 시간도 없이 이렇게 얼기설기 토해놓는 것 말고, 내 생각을 공과 시간을 들여 정리해볼 수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무슨 명분으로 그런 시간과 고요를 스스로에게, 또 내 노동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에게 설득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누가 그래, 옛다 하고 시간과 고요를 내준다고 해도 곧 얕고 얕은 재능과 사고의 한계에 부딪혀 좌절하고 실망하겠지... 어쩌면 그 두려움이 더 커서 여러 핑계 뒤에 숨는 것인지도. 이렇든 저렇든 비겁하다.
* 책의 배경이 된 헤이온와이의 한 서점. 이 책에는 가까이에서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헤이온와이의 빛과 그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사진 출처는 kulorbar.dk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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