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자로 운까지 척척 맞는 두 영화, '카핑 베토벤'과 '비커밍 제인'은 소재도, 스타일도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의 두 여성 예술가를, 하나는 허구로 하나는 사실에 입각해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카핑 베토벤은 베토벤이 9번 교향곡을 작곡하고 죽기까지의 시간을 다뤘으니 1820년대 후반 어름쯤일 테고, 비커밍 제인은 제인 오스틴이 후에 '오만과 편견'이 되는 '첫인상'을 완성한 1797년 이후 빠진 사랑 이야기를 다룬 것이므로 약 20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있다. 물론 비커밍 제인의 공간적 배경은 영국의 시골 마을, 카핑 베토벤은 오스트리아 빈, 소재는 하나의 음악, 다른 하나는 문학으로 차이가 나지만 어쨌든 19세기 초입 유럽의 여성 예술가라는 큰 범주는 들어맞는다.
음악학교 최우등생으로 베토벤의 악보를 필사하게 된 안나 홀츠(다이앤 크루거 분), 미래가 보장된 안정된 결혼이냐, 가난하지만 충만한 사랑이냐로 갈등하는 제인(앤 헤서웨이 분). 베토벤을 보면서는 왜 여성 예술가는 늘 엄마이며 연인으로 남성 예술가의 영감의 원천이 되거나 조력자가 되어야 하는 거지 불만스럽기도 하고, 왜 여성에게는 자신의 일이 사랑과 대등한 고민꺼리조차 되지 못하는 거지 하면서 답답해지다가 그랬다. 사랑을 포기하고 사랑없는 결혼도 포기하고, 이제 난 온전히 나의 펜으로(by my pen) 살아가겠다는 말보다 내 주인공들은 온갖 갈등을 겪다가 결국 해피엔딩을 맞게 될 것이라는 제인의 말이 더 진심으로 느껴졌다면, 문학을 얕잡아 보는 일이 될까. 특히, 비커밍 제인의 맨 마지막 부분에 자막으로 처리한 "그 후 그녀와 그녀의 언니 카산드라(약혼자가 군에 가서 죽었다)는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았다."는 자막은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순결과 순진, 순정을 은근히 고무하는 분위기를 풍겨서 기분까지 나빠졌다. 그 때문에 그 여성의 사랑이 더 진짜고 더 고귀하다는 듯. 쳇!
그들을 예술가로 만든 것이 아버지 같고 연인 같았던 남성 예술가의 지도 편달이었든,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열정적인, 그러나 실패한 사랑이든, 그들이 지향하는 예술에의 열망은 있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어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만난 다른 두 예술가를 보며 더 마음이 움직였는지 모른다. 지저분한 베토벤의 거처를 치우고, 요강을 비우고, 필사를 열심히 하러 다니던 와중에 안나는 옆집 할머니를 마주친다. 계단참에 의자를 내놓고 담배를 피우던 할머니는 말한다. "방에 창이 없어서.." 안나는 왜 이사를 가지 않느냐고 묻는다. 할머니는 말도 안되는 소리 말라는 듯, "여긴 베토벤의 옆방이야. 누구보다도 먼저 그가 완성한 음악을 듣지. 아마 온 빈 시내 사람들이 나를 질투할 걸." 그리고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오로지 그 혼자서 들었을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의 음률을 가만히 읊어보인다.
또 하나,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을 그 남자의 보호자인 삼촌에게 허락받기 위해 런던에 온 제인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여성 소설가로 살아가는 한 여자를 방문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묻는다. "소설가와 아내로 살아갈 수 있죠?" 계속 불안한 표정의 그 여성 소설가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애매하게 말을 흐리며 남편이 자신 때문에 힘들며 희생하고 있다는 말을 비친다. 떠나는 제인을 배웅하며 짓던 그녀의 안됐다는 듯한, 슬픈 듯한, 그렇지만 너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결연함이 뒤섞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여자 소설가의 이름과 소설은 우리에게까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제인 오스틴은 여성 셰익스피어로 칭송받고 있다. 그녀는 아마도, "아내와 소설가로 살 수는 있지만 훌륭한 소설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까.
내가 지향하고 싶은 진짜 예술가는 앞에 나온 할머니 같은 사람, 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난 체하려는 것이니까 진심이라고 믿지 말기를. 하지만 베토벤이 될 수 없다면, 제인 오스틴이 될 수 없다면, 나는 기꺼이 그 할머니가 되고 싶다. 물론 그러기도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카핑 베토벤을 보는 동안 이 영화의 감독 아그네츠카 홀랜드의 예전작 '토탈 이클립스'를 떠올렸다. 한쌍의 예술가, 라는 것도 그렇고 두 사람의 관계도 그렇고, 마무리도 그렇고. 하지만 역시 픽션과 논픽션의 차이일까. 개인적으로 '토탈 이클립스'만 못했다. 다시 보게 된다면, 안나가 베토벤의 마지막 곡 대푸가를 새롭게 듣게 되는 처음 장면을 유심히 보겠다. 그리고 교향곡 9번 합창의 초연 장면은 아무리 봐도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다. 그 감동이 언제나 한결 같아서 때로 음악이 사람보다 좋은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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