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 지음/박상미 옮김/마음산책/384면/2004
뉴욕 같은 인터내셔널한 동네에 사는 사람에게도 '이름'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영문으로 적은 제 이름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퍼스트 네임, 기븐 네임, 미들 네임이니 하는 것으로
구분된 이름의 요소들에는 민족의 뿌리와 가족의 테두리, 그리고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모두 담겨있다는 것이 비로소 눈에 들어옵니다. 이름을
불러야 나에게로 와 꽃이 된다고 노래한 시인이 있었지만 그렇게 보니 맨날 보던 이름도 새롭게 보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고골리는
미국에 사는 인도인입니다. 열차 사고의 현장에서 아버지의 생명을 구한 책의 저자 이름을 따 붙여진 이름 고골리를 그는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없습니다. 성장하면서 이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갖가지 일들은 존재의 장막을 하나하나 걷어가 마침내 자신의 실존을 대면하게 하는 하나의 장치처럼
느껴집니다. 그가 만나 사랑에 빠졌던 여성들, 그들에겐 삶의 방식이 이름을 대신합니다.
첫사랑부터 마지막 사랑까지, 그는 모두 네
명의 여성을 만납니다. 그 가운데 맥신과 모슈미는 그의 삶을 이해하는 양단의 인물인 듯 여겨집니다. 전형적인 뉴요커 맥신은 인도인으로서 미국에서
살아가야 하는 고골리의 분열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녀에겐 경계에 선 채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되물어야
하는 고골리 혹은 니킬의 삶은 "정말?"이라고 계속 물을 수밖에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삶입니다.
고골리와 비슷한 처지로 자신은 이전
세대와 다르게 살리라 마음 먹는 모슈미의 생각 역시 그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지요. 그녀에게 고골리는 그저 자신이 정한 금기를 어기는 데서 오는
쾌감 이상의 것을 줄 수 없었을 테니까요. 완전히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완전히 거부하지도 못하는 고골리 혹은 니킬. 자신이 어디 있는가,
누구인가를 불안하게 의식하며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그의 삶이 진한 커피를 들이킨 후처럼 머릿속을 날카롭게 헤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