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서평

지상에 숟가락 하나

양화 2006. 8. 5. 12:14

 

현기영 지음/실천문학사/390면/1999

올해 4월 3일, 58년만에 처음으로 현 대통령 입에서 제주 4.3이 언급되었다고 뉴스가 알려주었습니다. 문득 그래봐야 10년 안쪽이긴 하지만 광주민중항쟁이 '사태'에서 '민중 항쟁'이라는 어엿한 이름을 얻었는데, 제주의 4.3은 아직도 그 이름을 제대로 얻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란 유채꽃, 푸른 바다, 말과 해녀, 다른 나라 말 같은 낯선 사투리와 검은 돌의 섬. 그 이미지가 비극적인 역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제주도에 태어난 작가라면 누구라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 시간에 대해 중견작가 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서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유년의 이야기 속에 담겨있기에 오히려 희석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것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도, 울분 어린 회한도 담고 있지 않습니다. 밥으로 끼니를 할 수 없을 정도의 가난, 다른 여자와 함께 사느라 자신들에게 더 무거운 짐을 얹어주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지나 시간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밥으로 나온 고구마를 두고 투정을 하다 엄마에게 야단을 맞고는 울면서 고구마를 먹던 아이에게 엄마는 말합니다. "그것 보라.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가지 않앰시냐. 그러니까 먹는 것이 제일로 중한 거다." 검은 재와 숯더미 속에서도 어린 나무는 푸르게 솟아오르고 짠 물 속에도 맑은 생수가 흐르듯, 살아지면 살아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늙은 소설가에게는 비극적인 사건 역시 첫 자위와 사정의 기억처럼 그의 삶을 만든 하나의 일일 뿐인 것입니다.

열병으로 한쪽 청력을 잃고, 책을 읽는 조용한 아이, 공부 잘하는 장학생, 한창 예민하던 시기의 자신을 괴롭혔던 아버지의 행동. 작가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바다 가장자리로 밀려드는 잔물결처럼 우리들의 마음과 가슴을 적십니다. 스스로 고백했듯, 이 소설을 쓰는 것이 무의식에 곡괭이질을 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웠겠지만 과거라는 파편이 딸려올 때마다 가슴이 아프면서도 벅찼을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우리들이 모두 그렇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