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서평

길 위의 집

양화 2006. 5. 24. 16:23

 

이혜경 지음/민음사/284면/2005

길 위의 집. 책을 읽기 전 제목을 다시 한 번 되뇌어 봅니다. 둥지, 보금자리. 집을 비유하는 말들은 거의 고착된 곳, 따뜻한 곳 그런 느낌입니다. 하지만 ‘길 위’는 정반대의 의미로 다가오죠. 그런 길 위에 있는 집이라니. 책을 펼치기도 전에 마음이 내려앉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의 첫 장면은 어머니의 실종을 알리려는 낯선 진동음으로 시작됩니다. 사흘만에 찾아낸 어머니를 눕혀놓고서야 한 가족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외동딸 은용은 집을 잃고 헤매다니다 돌아온 어머니를 우선 씻깁니다. 발가벗겨진 엄마의 몸에는 엄마의 삶이, 현재가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월남한 아버지는 철공소로 자수성가하고 5남매를 키워냈습니다. 성과로만 본다면, 성공한 삶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그는 너무 피로했습니다. 소실의 자식으로 태어나 평생 피해의식에 시달려온 아내는 그에게 가장 만만한 상대였죠.

아이들은 그런 아버지를 미워했다가 동경했다가 불쌍히 여기면서 상처를 입기도 하고 닮아가기도 합니다. 큰 아들이 겉으로 순종하면서 속으로 미워하며 살아가고, 아버지의 폭압적인 모습을 싫어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를 닮아가는 둘째 아들, 물질적 소유욕으로 삶의 허기를 채우려 드는 셋째 아들,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넷째 딸 은용, 운동권 출신으로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고 믿는 다섯 째 아들.

가족은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요? 가족은 어떻게 완성되는 것일까요? 아버지와는 다른 세대인 다섯 아이들이 꿈꾸는 가족은, 집은 어떤 것일까요?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자신의 집을 찾아 길 위를 헤매고 있는 그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나 역시 그들처럼 길 위를 떠돌며 내가 쉴, 어떤 완벽한 집을 찾아 헤매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역시 그들처럼 그런 건 영영 찾을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