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가브리엘 루아 지음/김화영 옮김/현대문학/302면/2003
스물도 안된 신참내기 교사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납니다. 빈센토,
로제, 아르튀르, 리날드. 이름도, 생김새도, 행동도 다 다른 아이들과의 첫 만남은 ‘처음 만났다’는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집을 벗어난 세상과의 첫 만남이고, 선생님이 된 내게도 새 학기면 언제나 치르게 되는 첫 만남입니다. 수줍고 서툴지만 가슴 떨리고 약간은
두렵기도 한 그 만남은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처음’의 은유입니다.
낯선 선생님, 낯선 학교, 낯선 친구들 가운데서 종일
훌쩍이며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던 빈센토가 금세 선생님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가슴 찢는 두려움으로 선생님 목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때 누구의 목에 매달렸던가, 세상 굽이굽이 처음 맞닥뜨리는 모든 것들을 누구의 손을 붙잡고 견뎠던가 하는 생각에 빠져들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아이들은 조금씩 자랍니다.
선생님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이 없어 노심초사하는 착하기 그지 없는 클레르, 우크라이나
노래를 저 멀리 아름다운 광경을 가리켜 보이듯 부르던 닐, 자신의 힘을 넘어서는 어떤 힘에 휘둘리는 듯 신비스러우면서도 무한한 열정으로 글씨
쓰기에 몰두하는 드미트리오프, 아버지를 대신해 어린 동생과 만삭의 어머니를 돌보느라 교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늘 지쳐있던 앙드레, 선생님께 연정을
품은 수줍은 사춘기 아이 메데릭.
하지만 그 아이들은 세상과 처음 만났을 때 그랬듯 모두 무언가를 붙들고 있군요. 선생님의 칭찬,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 글씨 쓰기, 그리고 설익은 사랑까지. 사는 건 어느 순간도 반복되지 않지요. 몇 십년을 살아도 한 순간 한 순간이
낯설고 두려운 처음이지요. 그래서 우리 모두의 마음에는 빈센토와 드리트리오프가 있습니다. 두려움 없이 살아가기 위해 의지할 그 무언가를 꼭
붙들려고 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