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나를 울리나
"어느날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부엌의 나뭇간에 마치 두부처럼 잘라놓은 것처럼 노란 솔잎이 빼곡하게 채워진 걸 보았다. 앞마당의 장작더미도 예술이었다. 잘 마르고 가늘게 도끼질이 되어 차곡차곡 쌓인 나무청. 나는 처음으로 그 친구에 대해 열등감을 느꼈다. 그건 능력이라기보다 분위기였다. 아무리 공부를 더 잘하고 학교에서 더 인정받는다고 해도 결코 따라갈 수 없는 안정된 분위기. 부엌 바닥은 늘 평평하게 다듬어져 있고 아궁이는 불을 잘 빨아들이도록 시시때때로 보수가 되며 굴뚝이며 울타리에도 항상 손이 가서 가난하지만 낡아가지는 않는 집, 가장의 손길이 느껴지는 집."
세상에서 네가 제일 멋있다고 말해주자, 최은숙 지음, p. 210
최은숙 선생님의 담백한 글에 반해 전에 문학동네에서 내신 산문집을 사서 읽었다. 지하철용이었는데, 창피하게 몇 번이나 눈물이 고였다. 저 대목을 읽고는 잠깐 책을 덮었다. 내 마음속에 울퉁불퉁 고르지 못한 부엌 바닥 같은 것이 고요히 떠올랐다. 아무리 다른 걸 잘 해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어떤 분위기. 보수가 된 아궁이, 때가 벗겨진 굴뚝. 불티들이 날아올라 시꺼멓게 때가 끼었으나 누구도 돌봐주지 않은 채 버려진 굴뚝, 이리저리 갈라져 불을 때면 연기가 뭉클뭉클 새어나오는 고장난 아궁이, 내 마음속에 그런 것들이 있다. 있다.
'케스-매와 소년'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어떤 대목을 읽다가는 울고 말았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천덕꾸러기 소년 빌리가 영어시간에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황당한 허구를 적어보라는 말을 듣고 적은 글이었다.
"하루는 내가 깨어나니까 엄마가 자 빌리야 침대에서 일어나 아침을 머그려무나 그래서 보니까 베이콘과 달걀과 버터 바른 빵과 커다란 주전자에 차가 한 주전자 있었구 아침을 먹는데 바께는 해가 빗나고 있고 그래서 나는 옷을 입고 아래층에 내려갔다... 내가 쥬드는 어딧어요 하니까 군대에 갔다 하고 엄마가 말했고 인제 안 돌아온다. 그대신 너의 아빠가 돌아온다 그랬다. 방에는 불이 훨훨 타고 있었고 아빠가 갈 때 가주갔든 가방을 가지고 들어와쓴ㄴ데 나는 아빠를 한참동안 못 봤지만 갈 때하고 똑가탓다. 나는 아빠가 와서 기뻤고 쥬드가 가버려서 조았다. 학교에 갔을 때 선생님들은 나한테 친절하고 얘 빌리 잘 지내니 하고 말하고 모두들 머리를 쓰다드머주고 미소를 짓고 우리는 하루 종일 제미있는 걸 했다. 집에 오니까 엄마가 인재 나는 일하로 안 간다 하고 우리는 모두 점심에 칩스하고 콩을 준비해가지고 모두 영하를 보러 가서 이층에 올라가서 마깐에 아이스크림을 먹고 모두 집에 와서 저녁에 생선하고 칩스를 먹고 그리고 잣다."
위의 책, p.176쪽에서 재인용
그 나이 아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그런 일상. 그런 일상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허구라고 믿는 아이들이 있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