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경의 경주산책
강석경 지음/열림원/136면/2004
무언가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그 대상을 두고 쓴 글은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니 어여쁘고,
어여쁘니 그걸 묘사한 글이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글쓴이의 고향이면서 10년째 거주지이고, 그린이의 삶의 터전인 경주를, 그러니 이렇게
아름답게 쓰고 그린 책은 아마도 찾기 어렵겠죠. 특별한 인연의 이들에게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경주는 특별한 도시입니다.
봉긋 솟아오른 무덤과 경주의 별명인 천년고도는 경주를 과거 속에서 점점 스러져가는 도시로 느끼게 하지만, 우리 기억 속에는
생기발랄했던 사춘기의 한때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경주는 결코 과거에 머물지 않지요. “노곤하다고 생각했더니 봄이다”로 시작하는 <강석경의
경주산책>은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현재를 이야기하고, 그리고 흘러가는 자기 인생의 장면들을 붙잡아 보여줍니다.
이란인과
소그드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상이 늘어서 있는 괘릉을 이야기하거나 진지왕이 죽은 뒤에 도화녀와 맺어져 낳은 아들 비형이 친구 귀신들을 부려 하룻밤에
큰 다리도 놓았다는 이야기를 할 때 경주는 역사와 설화를 품은 도시가 됩니다. 하지만 “책장이 넘어가는 시간, ‘부생육기’를 읽은 내 젊은 날을
생각하니 이십여 년이 흐른 이 순간도 꿈인 듯 덧없다” 할 때는 경주의 유적과 무덤 사이로 흘러가는 지은이의 삶이
느껴집니다.
봄으로 시작해,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고 다음해 봄이 올 때까지 소설가의 발걸음은 용장골에서 산림환경연구소로
이어집니다. 그이의 서두르지 않는 발걸음을 따라 걷다 보면, 경주에 가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집니다. 올 봄에도 용장골에는 높지 않지만 수려한
산이 품을 펼치고 있고, 남산으로 가는 길의 계곡은 여전히 한적하겠지요? 수백 종의 식물이 이름표를 달고 있는 연구소의 뜰도
여전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