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 서서
최순우 지음/414면/학고재/2002
역사학을 전공한 저는 공부보다 답사를 더 좋아해서 과내에 답사반을
만들고 제 돈 들여 사전답사를 다녔습니다. 답사반원 몇몇과 전철 타고, 버스 타고, 걸어서 현장에 가는 게 참 좋았습니다. 관광버스 타고 턱
앞에 내려 볼 것만 휘 보고 후다닥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본 답사에서 느낄 수 없는 고즈넉함 같은 게 있었거든요. 이 책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을 읽을 때면, 늘 그때의 그 감정에 젖을 수 있어 자주 책을 펼쳐듭니다.
최순우 선생은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히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고 썼습니다.
1월 어느 날 분분한 흰
눈이 세상에 작은 흰 점을 촘촘히 찍은 듯 내릴 때, 부석사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호젓하고 스산스”러워서 눈물이라도 날 것
같았지요. 그러면서 문득 우리나라 문화의 아름다움에는 그런 정감조차 배어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익살스러운 민화나 도자기에
새겨넣은 다정한 상상 동물 문양, 간소하면서도 격조 있는 집의 모양새나 여백에 사람 몇을 슬쩍 집어넣은 풍경화에도 그런 정감은
스며있지요.
우리 문화에 대한 감상적 애정이 과하다는 평도 없지 않지만, 전 이 책이 우리 문화만의 아름다움을 응시하게 했다는
것만으로 무조건 지지하고 싶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불현듯 국립중앙박물관에 뛰어가고 싶다거나 창덕궁 연경당의 조그만 문들을 들락거리고 싶어지는
것, 버스터미널로 뛰어가 남도 가는 버스를 집어타고 낮은 야산이 이어지는 국토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것, 그게 아마 우리 문화 사랑의
시작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