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서평

딸, 그리고 함께 오르는 산

양화 2006. 4. 13. 03:20

 

제프리 노먼 지음/정영목 옮김/318면/청미래/2001년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 딸을 가진 아버지가 된 선배들이 "운이 좋은 남자는 첫 아이로 딸을 얻는다"면서 어찌나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지 제가 딸 가진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 가진 엄마라는 사실이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렇게 강력 추천을 받고 이 책을 읽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사람이 성장을 멈추는 순간은 바로 죽는 순간 그 이후겠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딸과 함께 수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산을 오르는 나이 50의 아버지. 그는 딸과 함께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수천 미터의 산을 오르기 위해 둘은 나란히 학교엘 가고, 거기서 산을 등반하는 기술과 함께 삶에 오르는 기술을 배웁니다. 노쇠한 몸으로는 할 수 없는 일도 있지만 그렇다고 꿈도 가질 수 없는 건 아니라는 것, 견딜 수 없다면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후회하지 않을 것,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서두르지 말고 그 과정을 즐길 것, 노력해서 얻은 성과를 사심없이 즐길 것, 무엇보다 함께 가는 이들과 정을 나누고, 서로를 보듬을 것.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값진 것은 그가 아버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과 똑같이 딸과 함께 산을 오르다 딸을 잃고 '아이를 산에 맡기고 만' 윌리 언솔드의 이야기를 담은 "난다 데비"를 읽고 공연히 불안해서 해피 엔딩의 등반기를 찾아읽는 모습을 보십시오. 이 책이 산을 오르기 시작해서 정상에 도달하는 것으로 끝맺지 않고 딸과 등반학교에 가고 가이드와 이야기를 나누고, 훈련 받는 내용으로 거의 5분의 4 이상을 채운 것이 바로 그 때문이지요.

아콩카과에서 딸 브룩과 아버지는 나일론 텐트 옆면을 두드려대는 강한 바람 소리를 들으며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그들은 전화나 전자우편으로 이야기를 나누죠. 하지만 그들은 그런 순간에도 함께 보냈던 순간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다시 시도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까운 이가 산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면서도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있잖아요. 좀 그리워져요." 그건 둘이 함께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