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서평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양화 2006. 4. 13. 03:06

 

신경숙 지음/282면/문학과지성사/1999

책을 보고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아침 7시일까, 저녁 7시일까 였습니다. 아침 7시라면, 즐거운 기분으로 여행 가기 딱 좋은 시간이고, 저녁 7시 기차는 어디론가 도망이라도 가는 것처럼 웬지 처연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책을 다 읽고 난 후에야 기차는 출발지뿐 아니라 종착지에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기차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의 어느 시기의 기억을 잃어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기차는 7시에 떠나네》는 신경숙 특유의 느릿느릿 마음을 쓰다듬는 것 같은 문체의 글입니다. 선 굵은 서사가 없다는 점을 섭섭해할 수는 있겠지만 그가 보듬으려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그 치유 과정을 들려주기에는 맞춤한 목소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서른 다섯의 여자 하진은 전화를 한 통 받습니다. 조카가 사랑을 잃고 손목을 그었다고. 그런데, 그 아이는 자신을 찾아온 남자 친구를 기억 못하더라고. 일시적으로 눈까지 보이지 않게 된 조카를 보면서 하진은 기억나지 않는 자신의 스무 살 무렵을 더듬더듬 찾아갑니다. 오선주로 살며 동지들과 사랑하는 이를 잃고, 아이까지 놓쳐버린 그 때를 말입니다.

세월이 흐른다고 상처가 저절로 치유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데,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그걸 묻어두고 스물엔 서른이, 서른엔 마흔이 되길 바라며 살지요. 하지만 맞닥뜨려 소독하고 약 바르지 않으면 낫지 않는 것이 상처 아니던가요? 책을 다 읽거든 아파서 그냥 묻어버린 기억은 없는지, 그것과 만나고 너무 늦지 않게 7시 기차를 타고 돌아오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