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뉴욕 vs. 뉴요커
*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의 뉴욕 센트럴파크 설치작업 "The Gates"
"우리는 가끔 무덤 앞에서 운다. 무덤 앞에서 그리워한다. 그러나 정작 되돌리고 싶은 것은
무덤 속의 사람이 아니라 그 시절의 자신일지도 모른다. 대학시절의 첫사랑이 아니라 그 눈부신
시절의 생기를, 미치게 사랑하던 그 사람이 아니라 미친 열정 속에 기꺼이 빠져들 수 있었던
그 무모한 용기를 그리워하는 것일지 모른다."
안녕 뉴욕, 백은하 지음, p. 236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을 보면 나 자신의 과거로부터 온 장면들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 어린 시절 내가 본 세상은 부모님의 자동차 뒷좌석에서 보았던 세상이다. 내가 살던
동네 너머에 존재하던, 다만 지나치며 엿보곤 했던 세상인 것이다. 그 세상은 정지해 있었다.
세상은 그 나름의 생을 갖고 있었고, 그 옆을 지나가고 있는 것을 알지도, 개의치도 않았다.
호퍼의 그림 속 세상은 나의 시선을 돌려주지 않았다" 마크 스트랜드 '에드워드 호퍼' 중에서
(그러니까) "독창성이란 창의력에 관한 것도, 새로운 기법에 관한 것도 아니다. 특히 유행하는
기법에 관한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그보다 훨씬 심오한 것으로, 그것은 한 사람의 존재의 본질과
관련된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
(요약하면) '그림(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이 결국 예술가인 그) 사람의 내적 경험을 표현하는 것'이다. (알고 보면 예술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들) 마음 속에 정물이 있다. .. 상을
차릴 때나, 책상을 정리할 때, 선반 위의 물건을 배열할 때, 나는 마음속에 정물의 모습을
참고한다. 이는 미적인 어떤 느낌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 물체와
미적으로 소통하는 그 순간의 느낌이 모여) 마음속에 정물이 만들어진다. ... 그리고 그런
느낌에 따라 결국 생활을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삶을 만들어가게 되나 보다.
뉴요커, 박상미 지음, p. 177-205, 부분 인용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고 나서 연속해서 뉴욕에 관한 책 두 권을 읽었다.
서로 다른 배경과 직업과 관심을 가진 두 사람이 느낀 뉴욕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다.
'안녕 뉴욕'을 먼저 읽었기 때문에, 그게 더 좋다,고 느꼈는데, '뉴요커'를 다 읽고 나니
그것도 그 나름대로 괜찮았다.
안녕 뉴욕을 쓴 백은하는 씨네21 기자를 하다가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것을 본 다음날 보험과 적금을 해약하고 오늘에 충실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난다.
낮에는 뉴욕의 한 네일숍에서 손님들의 손톱을 다듬어 주고, 시간이 나면 영화제를
쫓아다니거나 서점에 가거나 영화행사에 참석한다. 그의 어조는 굉장히 사적이고,
딜레탕트스러운 면이 있다. 아, 너어~무 좋아, 감탄사가 곳곳에 배어 먼저 튀어나온다.
반면, '뉴요커'를 쓴 박상미는 미술사를 공부하다가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젊은 예술가로
변신해 뉴욕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긴 시간 미국 유학생활을 했고, 관심도 미술이나
시 같은 것으로 좀 방향이 다르다. 만나는 사람이나 하는 일도 예술 관련 일을 하고 있다.
글도 예술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나 전문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스스로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이 강한 어조를 띠고 있다.
가령, 백은하는 가혹할 정도로 허름한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갔다가 그 영화관이 생긴 이래로
영화를 틀기 전에 나와 늘 노래하는 천식을 앓는 할아버지를 만나 씨네마천국의 알프레도를
떠올리고 눈물 짓지만, 박상미는 예술가 친구 옥타비오를 만나 뉴욕을 거닐면서 뉴욕과
뉴요커에 대해 인터뷰를 한다.
하지만 둘 다 뉴욕에서 만나고 있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 위에 인용한 말들처럼.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심금이라는 게 있다. 그 현들을 만든 건
그 자신이 갖고 있는 삶의 경험이고, 세상의 무언가가 그 현을 퉁겼다면, 그건 대단히 사적인
어떤 것이다. 인간이 다 다르거나 같으며, 사람이 변하면서 변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겠지.
부단히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애써왔던 내 과거가 조용히 접히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내 마음의 현을 따라가야지, 솔직하게, 담담하게.
* 위의 그림은 둘 다 언급한 환경설치미술가 부부의 작품. 센트럴파크를 뒤덮은 7500개의
문이다. 둘이 함께 언급한 것을 비교해서 살펴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저 설치미술과 우디 알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