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안다
* 이탈리아에 있는 '천사의 성' 앞에 있는 천사상이랍니다, 이쁘죠? 모르긴 해도
저 모델도 사람이었을 겁니다, 천사가 아니라."
"모든 결핍과 아픔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인간에게 남긴다. 지민이에게도 민수에게도
환영이에게도 아직은 어린 그들이 감당하기에 무거운 짐이 있을 것이다. 두려운 마음으로
생각하곤 한다.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을 내 아이가 같이 걸어가고 있다는 것, 앞으로 아이가
자라고 살아가는 길이 달라질 때 아이는 나와 함께 걸어온 길 바로 그 지점에서 새로 시작한다는
것을. 내가 내 아이에게 물려주는 것은 내 삶이라는 사실. 나의 결핍과 극복하지 못한 상처를
나도 모르게 아이의 어깨에 짐으로 얹고 걸을 수 있다는 것.
부모도, 자식도, 선생도, 학생도 우리 모두가 쓸쓸한 어깨를 갖고 있는 것만 같아서 나는 요즘
가슴이 시리다."
미안, 네가 천사인 줄 몰랐어, 최은숙 지음, P. 91
제목부터 철철 흘러넘치는 '착함'은 늘 나를 불편하게 한다. 사랑과 자비, 섬김이 넘치는 세상.
참 좋은 세상, 참 예쁜 세상, 참 착한 세상. 글쎄, 그걸 누가 모르냐구? 이런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러기엔 미운 사람도 참 많고, 억울하고 속상한 사연도 참 많고, 치사하고 구질구질한 일도
참 많은 것이 또한 세상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와글거리는 천사 떼들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아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시골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최은숙 선생님은 덜렁대고 잘 잊어버리지만 웃음과 눈물이
많은 선생님이다. 악귀 같이 떠들어대고 눈 돌릴 새 없이 말썽을 피우는 아이들 곁에서도
그 자리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자리라고 믿는 이다. 이웃들과 허심탄회하게 흉금을 털어놓고
노래방에 가고, 운동회가 열린 학교 문 큰 나무 그늘 아래서 고기를 구워 먹는다.
나뭇가지에 꽃을 맺은 목련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다가 지나가는 아이를 불러 보게 하고
칭찬해주라고 이야기해주는 이,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되새기며 아이들의 아픔을 헤아려보는
이, 수업시간에 잠을 자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아이들과 함께 영원히 졸업하고 싶지 않은 학교를
그려보고 아이들이 그 꿈을 잊지 않길, 그래서 그게 꿈에 그치지 않고 성숙해가길 빌어보는 이.
이 말들이 모두 맥락없이 들리지 않는 이유는 그가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거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의 빈 어깨에서 짐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이라서. 그래서 저
글에 밑줄을 그었다. 누가 아픔을 겪는 거 같으면, 자기 기준에서 그게 뭐 아프다고 그래?
난 이런 것도 견뎠다구, 하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니 아픔은 내가 이랬을 때 아팠던 것
만큼이겠구나, 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가끔 왜 그 사람 곁에만 그렇게 좋은 사람이 많은 거야,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다.
모두가 그 사람에게만 잘해주고, 많은 사람이 모여 있어도 그 사람이 중심이 된다.
말은 않지만 모두가 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란 걸. 구제할 길 없어 보이는
사고뭉치 아이에게서 보석을 발견해줄 줄 알고, 홀어머니의 강팍한 사정을 헤아리고
그 집 아이가 겪는 갈등도 이해하고, 무뚝뚝한 아버지의 진심을 짚어내는 사람이기에,
좋은 사람이 그의 곁에 많다는 걸.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나는 진심을 주고 있는가, 물어보면, 대답이 머뭇거려질 때가 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서 천사를 발견하는 건, 내 몫이라는 걸 알면서도 못한다. 이건 안다고
되는 일이 아닌 거다. 읽는 동안 여러 번 웃음 지었고, 눈물 지었다. 여기서는 저길 꿈꾸고,
저기선 여길 꿈꾸고. 언제나 좋은 것은 과거에 있었고, 미래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내게
자기 삶에 만족하며 그 안에 꿈의 씨를 심고 거두는 그이의 삶은 흉내낼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생각하게 되겠지. 누구나 아는 것을 모두가 하는 건 아니라는 것.